내게 흡연은 너무 어려워

by 징졔

나는 엄마 태중에서부터 아빠의 담배 연기를 맡았다. 우리나라에서 흡연이나 간접흡연에 대한 위해성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그전까지는 버스나 기차는 물론이고 비행기에도 흡연석이 있었다. 해외출장이라도 다녀올 땐 외제 담배 한두 보루 정도의 선물은 꼭 준비하기 마련이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에서나 외부의 공공장소에서나 아무 거리낌 없이 담배 연기를 맡아 온 나에게 담배 연기는 친숙했다. 오히려 간접흡연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겨울철 아빠 삼 형제 분이 할머니 방에 모여 바둑이라도 둘라치면 한 시간도 안 되어 짙은 안개라도 내린 듯 온 방 안이 담배 연기로 뿌얘졌다. 난 커피나 과일을 준비해서 그 방에 들어가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며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고, 담배 냄새가 싫지 않았다. 그때 그 방의 담배 연기는 아늑함이었고 정겨움이었다. 어릴 땐 아빠 담배에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여 드리며 재미있어하기도 했고, 처음 해외에 나갔을 때 아빠께 선물한 것도 옥돌로 만든 재떨이였다.


사회적으로 흡연의 위해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을 때 아빠는 이미 50대 중반을 넘기고 계셨다. 복부비만도 꽤 심하셔서 엄마나 우리 형제는 기회만 되면 아빠께 담배를 끊으라고 졸라댔다. 그때마다 아빠는 익살스럽게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와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하며 비교 분석하셨는데, 늘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담배를 끊어야 하는 이유보다 하나가 더 많았다. 아빠는 금연할 의사가 없으셨다.


그러다가 돌아가시던 그 해, 병원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간호사에게 들키셨다.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선생님에게 걸린 학생처럼 아빠는 수간호사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세상에나, 우리 아빠가 마치 범죄자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일언반구 반박도 못하고 야단을 맞으시다니… 난 병실 복도에서 눈물을 훔쳤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혹은 아파트나 공공건물의 흡연구역을 지나다가 의도치 않게 맡게 되는 타인의 담배 냄새는 몹시 역하기도 불쾌하기도 하다. 길거리 흡연도 단속해야 한다는데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가끔 나는 그게 담배 냄새라는 것을 의식하기도 전에 가슴이 출렁하며 그리움에 목이 메어오는 순간을 맞을 때가 있다. 어떤 차이인 줄은 잘 모르겠으나 아빠를 추억하게 되는 특유의 담배 냄새가 있다. 나에게 담배 연기는 때로 추억 속의 아빠를 소환하는 매개인 것이다. 바둑판이나 커피 잔을 앞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를 피우시던 아빠의 모습이 오늘도 몹시 그립다.


남편 00 씨도 담배를 피웠다. 당시는 남학생들의 경우 대학에 들어가면 마치 성년 신고식이라도 하듯 너도나도 담배를 배웠다. 도서관 앞 벤치나 강의실 복도까지 담배 연기로 자욱했으며, 중학교 때부터 담배 피운 것을 무용담 삼아 으스대던 남학생도 있었다. 남학생의 흡연은 마치 권리인 듯 공개적으로 당당했으나, 여학생의 흡연은 드물기도 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서 비밀스럽게 행해져야 했다. 여학생 누가 흡연을 하더라는 쑥덕거림은 순식간에 입에 입을 거쳐 소문으로 퍼져나가기 마련이던 시절이었다.


한때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우며 사색에 잠긴 남자가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분위기에서 풍기는 쓸쓸한 도시적 고독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남편 00 씨는 손가락이 가늘지도 길지도 않을뿐더러, 담배 피우는 폼도 폼이라 할 만할 것이 없었다. 날 웃게 하려고 자주 담배 끝에 시선을 모으고 사팔뜨기 눈을 만들기도 했고, 잘 만들지도 못하는 도넛(담배 연기로)을 만든다고 죄 없는 자기 볼을 열심히 두드리기도 했다.


결혼하고 2~3년 후 남편 00 씨는 갑자기 담배를 끊었다. 나는 00 씨가 담배를 끊는 줄도 몰랐다. 며칠간 얼굴이 노래지고 틈만 나면 오한이라도 난 듯 누울 자리를 찾길래 몸살이 났나 했다. 한 열흘 정도 고생하더니 남편 00 씨는 담배를 딱 끊었다(몇 년 후 친구의 유혹에 빠져 살짝 한 차례 탈선한 것을 아들의 고자질로 알고는 있지만…).


쉽게 담배를 끊은 남편은 그 이후 주변의 누가 금연하느라 고생한다거나 금연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그냥 이 생각 저 생각할 것 없이 딱 안 피워버리면 그만인 거야’라며 기고만장해했다. 그렇게 우리 집은 담배 연기 없는 청정지역이 되었다.


난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 젊은 시절 가끔 술자리에서 ‘나도 피워볼래’라며 담배를 입에 물어보기는 했으나 겁이 나서 도무지 담배 연기를 삼키질 못했다. 연인이었던 남편 00 씨는 친절하게 담배 연기 삼키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지만 끝내 난 하지 못했다. 결국 그렇게 뻐끔거리기만 하면 담배 아까우니 그만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담배를 피우지는 못했지만 술자리의 담배 연기가 싫지는 않았다. 아마 난 간접흡연 중독자였을까?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장의 누군가가 내게 담배 한 대 피우러 같이 가자고 청한다는 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의미였다. 그것은 직장에서 내 존재감을 증명해 주는 일이기도 했고, 일종의 소속감이기도 했다. 자판기 커피 컵을 만지작거리며 직장 동료들의 담배 연기를 마셔야 하는 것이 내게는 특별히 싫은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난 간접흡연 중독자였나 보다.


갱년기에 접어든 나는 몹시 바쁘고 피곤한 가운데도 가끔 견디기 힘든 권태로움에 시달리곤 했는데, 그 무렵 ‘사랑은 너무 복잡해’라는 영화를 보게 된다. 중년에 접어든 부부가 담배인지 마리화나인지 대마초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한 모금씩 나눠 피우며 깔깔거리고 웃는 장면이 마음에 확 다가왔다. 저거 한 모금이 저런 기쁨과 웃음과 활기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때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자들의 담배 피우는 장면을 유심히 보게 된다.


온몸으로 담배를 느끼는 연기를 정말 잘하는 연기자들이 있다. 가슴속 온갖 정서적 찌꺼기를 깊숙이 토해내며 느끼게 되는 그런 느슨한 위안, 나른한 희열, 몽롱한 편안함. 난 담배를 제대로 피워본 적도 없는데, 완전하게 감정이입이 된다. 오랜 기간 누적된 간접흡연이 부리는 마술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마다 난 ‘여보, 여보, 여보, 여보, 나 저거 뭔지 알 것 같아. 정확하게 저 기분 말야’라며 온갖 호들갑을 떤다.


오랜 간접흡연의 영향으로 친숙하기도 하고 때론 그립기도 했지만, 그러나 담배는 내게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금단의 영역 같은 것이었다. 직장 생활 막바지에 번아웃과 우울증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며 힘들어했을 때, 그 치유의 방법으로 가끔 가장 흐트러지고 퇴폐적인 모습의 자신을 상상하고 묘사하며 일종의 소심한 쾌락을 탐하기도 했다. 당시에 남긴 많은 낙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부스스한 머리, 잠에서 덜 깬 눈엔 눈곱이 붙어 있을 수도 있겠지.

잠자리에서 나온 그대로의 겨울 파자마 바지,

오소소 몸을 떨며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내린다.

커튼 틈새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에 무기력한 눈길을 주다가 커피에 위스키 두어 방울 떨어뜨려 본다.

겨울잠 자는 곰 마냥 소파 위에 웅크려 있는 담요를 아무렇게나 어깨에 걸치며, 커피를 한 모금 훌쩍 마신다.

지랄 같군, 대단한 반역이라도 하듯 한마디 툭 던져보며 피식 웃는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이라도 붙여야 제격 아닌가?

담요 안에서 맨발을 꼼지락거리다가 소파에 등을 기댄다.

커피가 출렁, 팔을 간신히 수평 유지하며 한없이 무거운 짐 내려놓듯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천정에 눈길을 주다 다시 눈을 감는다.

간밤의 꿈은 무엇이었더라? 〕


심지어 상상으로 지어낸 글에서도 난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내 나름의 퇴폐를 완성하지 못한다.


갱년기를 겪으며 담배를 피워볼까 하는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증명된 흡연의 위해성은 겁 많은 나에게 너무 엄중한 경고였다. 그래서 ‘내가 88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면 그때부터 담배를 피워보겠다’라는 신박한 계획으로 날 달래게 된다. 사실 88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자신도 없지만, 88세가 넘으면 흡연이 내 건강이나 수명에 그다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왜 꼭 88세냐고 묻는다면, 글쎄… 88세 생일잔치를 미수연이라고 하는데, 난 그냥 그 미수연이란 단어가 예쁘다.


어쩌면 시댁 고향 동네에 나이 90이 될 때까지도 건강하게 흡연을 즐기던 먼 친척 할머니가 계셨는데, 언제나 당당하게 모든 일에서 집안의 어른 역할을 하시던 그 모습이 멋져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계획을 가족에게 밝히자 술과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는 아들 녀석은 그런 나쁜 생각은 초장에 때려잡아야 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마,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살면 자기 집에서도 담배 못 피우는 거 알지?’라고 한마디 했고, 남편 00 씨는 ‘여보, 그때가 되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궐련 형 담배는 아마 없을 걸’이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그 순간 내 뇌리에 떠오른 형상은 88세가 넘은 꼬부랑 할머니가 아파트 흡연 구역에 쪼그리고 앉아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는 모습이었다. 뭔가 환상이 깨지면서 피시식 웃음이 나왔다.


그다음에 생각해 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내 손에 쏙 들어가는 나만의 라이터를 갖겠다는 것이다. 라이터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가끔 흡연이 주는 위안과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꺼내 만지작거리며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연기를 해보는 것이다. 설마 담배 피우는 연기만으로도 건강에 해로울까? 적어도 간접흡연의 위해는 없겠지?


여보, 올해 내 생일선물로 라이터 어때? 색깔은 딥그린이 좋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