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병원에 가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어지간한 잔병이면 병원에 가느니 며칠 더 아프면서 자연 치유되기를 바라기 일쑤였고, 근거 없는 자가 진단을 밥 먹듯이 했다. 그런데 며칠 아프더라도 절대 자연 치유가 되지 않을뿐더러 부모님 눈도 숨기기 어려운 것이 치통이다.
사실 나는 치과 가는 것이 두려웠을 뿐 아니라 몹시 부끄럽기도 했다. 영구치가 나면서부터 치열이 엉망이었고, 여기저기 충치 땜빵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 가는 치과에서 입을 벌리고 치아 상태를 보여주기가 영 민망했다. 게다가 너무 겁이 많아 간단한 스케일링을 받을 때조차도 두 주먹을 꼭 쥐고 온몸을 긴장시키기 때문에 하루 정도는 몸살을 앓아야 했다.
결혼 후에는 정기적으로 치과 검진할 시간 찾기도 쉽지 않아 아주 다급한 경우가 아니면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다 주말 부부 3년 반에 남편 00 씨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등 정신없이 바빠지면서 거의 몇 년 동안 치과 문턱에도 안 갔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야 집과 적당한 거리에 있는 치과를 찾았다.
잔뜩 긴장한 채 대기실에서 진료 예약 시간을 기다리며 의사 선생님의 프로필을 열람하던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나보다 열세 살이나 어린 의사 선생님이었다. 아마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문들과 개업을 한 것 같았다. 병원에서 나보다 나이 어린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치과 가는 것도 무섭기만 한 철부지인데, 세월이 나만 두고 저 혼자 멀리 가버린 것 같은 낭패감이 살짝 밀려왔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가시를 세운 채 긴장해서 진료 의자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온 의사 선생님은 치과 진료실보다는 학교 농구 코트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길쭉하고 말쑥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의사 선생의 환자 대하는 태도가 어찌나 인정머리 없고 까칠하던지 ‘아~ 해보세요’라는 말에도 입을 열어 내 치아 상태를 보여주기가 싫었다. 역시나 내 치아 상태를 살펴본 젊은 의사 선생의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에 어찌나 무안하던지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스케일링하고, 충치 때우고, 신경 치료한 후 뒤집어씌우고, 잇몸 치료하고… 한동안 치과를 다녀야 했다. 잇몸 치료를 할 때는 어찌나 인정사정없이 아프게 마취 주사를 놓는지 마치 일부러 날 골탕 먹이려는 것 같아 약이 오를 정도였다. 그때는 마취 주사 맞을 때 아프지 않게 미리 발라주는 마취 연고도 없을 때였다. 게다가 뭔 질문을 하면 어찌나 시니컬하게 답변을 하던지 늘 기분이 상했다. 하긴 뭐 나도 그리 고분고분하고 착한 환자는 아니었겠지만…
치과 치료를 받고 나올 때는 힘들게 애견 미용받고 나온 강아지 같은 고약한 심정이었다. 말끔해지고 산뜻해진 것 같긴 한데 심정적으론 뭔가 몹시 억울하게 당한 것 같은 분함이 느껴지는… 치과 치료를 받은 날은 남편에게 그 젊은 의사 선생에 대한 온갖 시시콜콜한 뒷담화라도 해야 속이 풀렸다. 말투를 흉내 낸 유치한 험담에, 심지어 ‘그 피지컬로 진료실에 갇혀 있긴 아깝지 않아?’라며 빈정대기도 했다.
여전히 정기검진은 건너뛰기 일쑤였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무안한 표정을 감추고 되레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으로 가시를 잔뜩 세우고 치과를 찾았지만 그럭저럭 단골 치과가 되어갔다. 젊은 의사 선생은 여전히 쌀쌀맞고 까칠하고 묻는 말에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섬세하고 깔끔한 솜씨였다.
그러던 중 나에게 대형 사고가 터졌다. 아침 출근길에 급하게 서둘러 아파트 현관을 나오다가 구두 굽이 바지에 걸려 넘어지면서 얼굴을 그대로 시멘트 바닥에 찧은 것이다. 아마 나의 팔자걸음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다른 한 손엔 책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손을 짚거나 어떻게 방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둔하디 둔한 내 운동신경에 뭘 어찌 방어할 수도 없었겠지만. 남편 00 씨는 같이 출근하려고 차를 아파트 현관 입구에 대놓고 기다리다가 운전석에 앉은 채로 그 비현실적인 장면을 그대로 지켜보아야 했다.
마로 만든 통이 넓은 여름 정장 바지의 가랑이가 죽 찢어졌으며, 내 한평생 그렇게 입에서 많은 피를 쏟기는 처음이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놀란 정신을 수습하고 찬찬히 살펴보니 앞니 하나가 얼얼하게 감각이 없었고 광대뼈에 멍이 들고 입술이 터져 부어오른 것 외는 그래도 다른 큰 상처나 증상은 없는 것 같았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
씻고 잠시 쉬다가 치과를 찾아갔다. 젊은 의사 선생께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앞니 하나가 신경이 죽을 것 같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래도 다른 치아가 멀쩡한 것이 기적이었다. 앞으로 진행될 치료 과정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대기실로 나와 남편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날 만날 약속이 되어 있던 친구까지 소식을 듣고 놀라 치과로 찾아왔다.
퉁퉁 부은 입술로 그날 아침의 무용담을 열심히 떠들고 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 젊은 의사 선생께서 대기실로 나와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손에 진료용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보니 다른 환자를 치료하던 중에 ‘아~ 맞다’하며 뭔가 잊은 걸 급하게 확인하러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석연치 않은 표정 같기도 하고, 망설이는 표정 같기도 했다. ‘왜? 뭐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설마 나를 지켜보러 대기실에 나왔겠어?’하는 생각이 들었고, 의사 선생도 바로 진료실로 다시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한 컷의 장면이 오래 내 기억 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게 된다.
신경이 죽은 내 한쪽 앞니를 어찌나 지루하고 꼼꼼하게 치료를 했는지, 거의 2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잘 쓰고 있다. 표시 안 나게 덮어씌우기는 했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또 대형 사고를 당한다. 새벽에 욕실에서 쓰러져 입술과 이를 크게 다친 것이다. 당시는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고, 마음속의 사직서를 아침저녁으로 꺼내 보던 시절이었다. 학기 초 회식 자리에서 술이 좀 과했다. 직장에 대한 환멸이 평소보다 과하게 마시게 했을 것이다. 늘 그랬듯 남편 00 씨가 데리러 와 주었고, 난 귀가 후 물도 충분히 마셨고, 강아지랑 한참 놀았고, 술이 다 깬 후 수업 준비까지 마치고 안전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욕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고,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하는 남편 00 씨의 커다란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의 일기에 나는 ‘새벽에 겪은 그 난리 소동을 늙어가면서 또 겪게 될까? 흙빛으로 질린 얼굴에 그 큰 눈이 더 커져 어찌할 바 몰라하던 00의 모습. 앞으로 살면서 나로 인해 00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 일은 더 없었으면 좋겠는데…’라고 쓰고 있다.
남편 00 씨는 119를 불러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난 너무 잠이 고팠다. ‘일단 좀 자고 싶어’라고 사정했고, 대충 응급처치를 하고 난 후 깊은 잠에 빠졌다. 아마 당시 나는 절실하게 쉼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직장도 결근하고 한낮까지 자고 일어나니 속도 많이 가라앉았고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앞니 세 개가 표시는 잘 안 났지만 조금씩 끝이 부서진 것 같았고, 방향이 살짝 틀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입술 아래가 좀 찢어졌고, 치아가 받은 충격으로 입천장에 물집이 생겨 있었다. 그렇게 끙끙거리며 주말을 보낸 후 마스크로 엉망이 된 얼굴을 가리고 출근하면서 틈을 내어 치과를 찾았다.
내가 느끼는 통증에 비해 의외로 치료는 별로 할 것이 없었다. 끝이 살짝 부서진 치아 세 개를 표시 안 나게 잘 다듬고, 입천장 물집에 약 바르고 하는 등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평소에 필요 없는 말이라곤 한마디도 하지 않던 의사 선생께서 치료를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치게 되었는지 너무도 자상한 말투로 물어오지 않는가. 새벽에 욕실에서 쓰러지는 바람에 다쳤다고 해도 쓰러진 경과나 어디에 어떻게 어떤 순서로 부딪혔냐는 등 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것을 계속 물어왔다. 어~? 이러다간 전날 과음한 것까지 털어놓아야 할 판이었다.
나의 사고에 안부를 물어오는 그 누구에게도 전날의 과음으로 새벽에 쓰러진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5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에 자기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서 과음하고 쓰러졌다는 인상은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다.
젊은 의사 선생의 이어지는 질문에 갑자기 방어 심리가 발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쌀쌀맞은 말투로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설명해야 하나요?’하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머쓱해진 의사 선생이 더 이상 묻지는 못하고, ‘아~ 뭐 그냥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라면서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으로 말끝을 흐렸다. 십 년도 넘게 단골로 다니면서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이었고, 자상한 모습이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라는 느낌이었고, 이 역시 오래 내 뇌리에 남아 있는 한 컷의 장면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치아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그 치과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거의 한 달간을 망설였던 것 같다. 그 치과를 가자니 치과 한 번 다녀오는데 하루를 다 써야 할 것 같은 거리였고, 다른 치과를 찾자니 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결국 치과 다니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힘들다는 판단 아래 집 가까운 곳의 치과를 찾았다. 동글동글하고 아담한 의사 선생님은 매우 친절했지만 나는 까칠함이 오히려 익숙해져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관찰하게 되는 등 한동안은 서걱거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그때마다 남편 00 씨와 예전 단골 치과의 그 의사 선생에 대한 추억을 이리저리 끄집어내어 가며 마음을 달랬다. ‘성격은 까칠해도 실력은 좋았던 것 같아’ ‘멀어도 그 치과를 다녔어야 했나?’라는 등등…
그러면서 불시에 떠오른 두 개의 장면과 훅 들어온 생각.
내가 크게 이를 다쳤을 때마다 그 젊은 의사 선생님이 보여준 평상시랑 달랐던 그 모습, ‘아~!!! 설마 그런 것이었을까? 내가 가정폭력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그렇게 지켜보았던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궁금해했던 걸까? 내 마음 다치지 않게 알고 싶어서?’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 완벽하게 가정 폭력을 당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랬구나~’ 세상 까칠하고 인정머리 없게 보이던 그 젊은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의사로서의 책임감에 충실한,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겐가 언제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 순간 누구에겐가 보호받고 있었다는 안도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라’, 역시 공자님의 말씀이 옳다.
이제 더 이상 그 치과는 다니지 않지만 그 젊은 의사 선생님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나를, 우리 주변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키다리 아저씨로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