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치전까지 관찰치료

by 써니소리

지하철 첫차를 타고 병원에 간다. 2년 만에 병원에 가는 거라 이게 떨리는 감정인건지 설레는 감정인건지 모르겠다.


가끔 직장에 가기 위해 첫 차를 타는데 지하철 풍경은 주말과 평일에 차이가 있다.

새벽에 일찍 출근하시는 사람들과 하루에 시작인데 취해 있는 사람들...

주말엔 첫 차에 사람이 많지 않지만 평일엔 사람이 많다. 환승역에서는 뛰다시피 사람들이 달린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차를 타고 오면 많이 복잡해서 지하철을 타는데 집에서 나왔을 때 비가 올 것 같았지만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나는 주로 말을 잘 듣지 않는 철부지 아이와 같은 수준인 어른이다. 날씨를 검색해서 대충 비가 올 시간을 알았지만 나는 기상청 예보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가 재유행이니 꼭 마스크를 챙겨가라는 아내말도 듣지 않았다.

내가 왜 말을 잘 듣지 않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 도착했을 때 역시 비가 오고 있었고 새벽일찍이다보니 병원 근처에 마스크를 살만한 곳도 없었다.

병원 진료결과가 얼마나 좋으려고 아침부터 일이 이렇게 꼬이나 싶다. 말은 잘 듣지 않지만 생각은 긍정적인 편이다.

아들을 데리고 혜화에는 공연을 보러 가끔 왔었는데 오늘도 같이 올 걸 그랬나 싶다.


한 5 분서서 비가 그칠까 봤는데 안전안내문자가 왔다.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예보되어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는 친절한 안내이다.

비가 그칠 거 같지 않아 걱정하고 있는데 지하철 입구에 파라솔과 우산으로 대충 비를 막고 김밥을 파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매번 병원에 올 때나 공연을 보러 올 때 뵙는 분이다. 몇 년 전에 오후 퇴근 때쯤 몇 개 안 남은 김밥을 샀을 때는 김밥이 조금 변해있어서 못 먹었던 적이 있다. 그래도 친전하고 부지런하신 덕분에 나는 그냥 팔아드렸다. 노점 하시는 분들이 파시는걸 나는 조건 없이 가끔 산다. 오늘은 친절하게도 우산을 팔고 계셨다. 여러 번의 고민 끝에 우산을 한 개 집어 들었다.

그래도 내리자마자 우산을 살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올라가면 어린이 병동이 가장 먼저 보인다. 내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었을 때 화상을 입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상당히 안타까웠었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가장 힘들어 보이지만 가장 잘 버틸 수 있다는 표정으로 간호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엄마들은 눈이 부어있다.


그리고 응급실을 지나 암병동에 가는데 여기도 역시 대부분의 가족들은 지쳐있다.

환우분들 역시 지쳐있다.

각자 다 사정이 있을 텐데 안타까운 사연이 대부분 일 것이라 궁금하지는 않다.

모자란 어떻게 눌러썼느냐만 봐도 대충 어떤 상태인지를 추측할 수 있다.


'동행'이란 프로그램에서 암환자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 자녀가 학교를 가는 것. 시집 장가를 가는 것. 가족들과 맛있는 걸 먹는 것 등을 이야기하다가도 그냥 곁에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좋으니 같이 있게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나는 그들보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처음에 진단을 받았을 때는 같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기 때문이야.

서울대학교병원은 항상 환자가 넘쳐난다. 환자가 없어서 병원이 한가했으면 좋겠는데 올 때마다 많은 환자들이 있다.

근처에 월세방에는 장기간의 간호를 위해 환자 보호자들이 많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병원진료를 받으러 이동하는 게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응급환자가 또 있다.

한 번도 그냥 환자 없이 지나쳤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소방관들은 항상 바쁘게 움직이실 텐데 참 고마운 분들이다.


내가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았을 때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분들을 보는 여유도 생겼고 이곳저곳 다녀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나는 2017년도에 수술을 해서 아직 완치 통보를 받지 못했다. 10년에 관찰치료가 필요하다고 했고 수술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갔다가 1년에 한번 가고 지금은 2년 만에 병원을 찾았다. 상태가 많이 좋아진 탓에 병원 가는 주기가 늘어났다.


병원에 올 때는 뭔가 잘 살고 있나 검사를 받는 기분이다. 재발했을 때 사망률이 90%가 넘는다고 했다. 그간 '나는 잘 관리를 해왔나. 혹시나 재발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병원 갈 때에만 더 많이 생긴다.

흉부 CT를 찍고 나면 일주일 뒤에 결과를 들을 수 있다. 그때까지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과 이미 완치되어서 큰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서

우리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아이들이 잘 크고 성장할 때까지는 지켜줘야 할 내 책임이 있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힘이다.

오늘도 병원은 바쁘게 돈다. 진료를 보시는 의사분들도 환자들도 119 구급대원들도

병원을 청소해 주시는 분들도 다들 바쁘게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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