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아버지와 동생 셋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목욕탕에 갔다. 목요탕에서 단지에 담긴 바나나 우유를 먹고 아버지가 물에서 시켜주는 수영 놀이는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크고 예전에 살았던 곳에 가봤을 때는 목욕탕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아쉽지만 곳곳에 바뀌지 않은 곳이 있어 추억이 생각났었다.
나도 아들을 낳고 주말에 놀러 가지 못하면 목욕탕이라도 꼭 갈려고 노력한다. 씻겠다는 목적을 두지 않고 그냥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가곤 하는데 아들 녀석이 부쩍 컸다는 것을 목욕탕에서는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어서 좋다.
아버지는 내가 커가는 시절 많은 사고를 겪으셨다. 잘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걱정을 하던 기억은 있다.
나는 아버지랑 목욕을 하고 나서 국밥을 같이 먹지 않는다. 아마 아버지는 모를 실 텐데 자연스럽게 시간을 피하거나 다른 메뉴를 먹자고 했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얘기를 잘 안 하는데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 회복이 되었을 때쯤 목욕을 갔었다. 얘기하시기를 할아버지는 엄하셨고 장남인 아버지를 많이 혼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고 나서는 장손이라며 끔찍하게 챙기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목욕을 하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국밥을 사주셨는데 국밥을 드시고 집에 오셔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간경화가 있으신 할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할아버지가 병원에 다녀와서 목욕을 하시고 국밥을 드시고 나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아버지와 국밥을 먹고 목욕을 같이 하지 않았다.
왠지 그걸 똑같이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 같은 생각이 어릴 때부터 있어서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박혀있다.
아들을 데리고 나는 국밥을 먹는다. 할아버지랑 우리 아들은 목욕탕에 같이 간 적이 없다. 아버지가 상반신에 화상을 입고 흉터가 심해진 뒤로는 목욕탕에 가질 않으시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징크스 같은 징크스 아닌 쓸모없는 걱정으로 목욕을 갔다가 국밥을 먹지 않았는데 그걸 극복하고자 아들하고는 같이 먹는다.
4학년 아들을 데리고 2살 딸은 안고 오래된 순대국밥 집에 갔는데 할머니 여러분께서 일을 하고 계셨다. 아이들이 나이도 차이가 나고 아빠가 혼자서 데리고 간 게 짠하셨는지 엄청 많은 질문을 하셨다. 물론 요새 어린애를 보기 힘드니까 반가우셨겠지만 아마도 엄마가 없이 크는 줄 아셨나 보다.
'엄마는 어디 갔니, 아이고, 아빠가 둘을보는데 힘들겠네, 나이가 많이 차이 나는데 어쩌냐' 등등
들리는 질문과 들리지 않아야 되는 말들이 들리는데 나는 그분들이 들으시도록 엄마와 통화를 하고 금방 들어가겠다고 했다.
한 번은 아내가 야근을 하고 아내 회사 근처에서 아이들과 삼겹살을 먹었는데 아주머니께서 계속 쳐다보시다가 잘 크고 아빠한테 잘하라며 아들에게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셨다.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래된 식당에 가면 저렇게 보이는가 보다. 아니면 내가 그 눈빛과 마음을 오해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분들의 생각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