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그저 아무런 문제나 고민 없이 물 흐르듯 지내는 게 가장 큰 행복인걸 느꼈다. 다들 사는 것처럼 산다는 게 기준이 없다 보니 어떤 삶이 보다 나은 삶인가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픈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는 게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내 주변에 친하게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이 많은 아픔을 겪었다. 나는 걱정을 하고 슬픔을 나눴는데 결국에 내가 닥친 일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걱정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찾아 최대한의 도움을 줬다. 그러나 그게 다였고 어려움을 직접 겪지 않아 당사자들에 마음까지 이해하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줬던 선배는 이혼을 했다. 요새는 이혼이 별게 아니라고 하지만 선배는 어머님 없이 혼자 자라다가 딸을 낳고 나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선배는 가족이라곤 아버지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다. 형수에게도 최선을 다했고 두 딸에게도 아빠로서 최선을
다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형수가 다른 남자가 생겨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나도 충격이었다. 그전에 통화할 때는 이혼은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나는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당사자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혼은 생각보다 쉬웠다. 변호사를 사고 이혼에 누가 결정적인 영향을 따지다가 결국엔 아이들을 생각해서 합의 이혼을 했다고 한다.
선배의 직장 생활도 흔들렸다. 두 딸들의 아침을 챙기고 저녁까지 차려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놨고 엄마의 빈틈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반찬을 계속 바꾸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 노력들이 딸 둘을 혼자 키우는 아빠를 보는 선입견을 이기지 못했다.
딸들의 친구 어머님들이 집에 놀러 가는 거를 조심하라고 하고 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딸들에게 들었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많은 선입견과 곱지 않은 시선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집안 형편이 넉넉했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어도 성적이 나보다 좋지 않았던 친구다. 그런데 대학졸업 이후 아버지 사업을 배우고 물려받아 돈을 잘 벌어서 속으로 상당히 부러워했었는데,
어머님이 아프고 친구 재수 씨가 아파서 신경 쓰고 걱정하는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최근에 삶을 포기한 친한 동생과 당뇨에 걸려 이가 빠진 친구 놈을 생각하면 나는 걱정이 많지만 가족들 건강하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2017 흉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벌써 7년이 지났다. 아직 완치판정을 받지 않았고 최초 발견 됐을 때의 두려움은 아직 남아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주변에 안 좋을 일이 닥친 사람들을 보면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부자가 아니고 큰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갖지도 않았지만 공무원 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잘 키워주는 아내와 초등학생이지만 수학을 잘해서 영재원까지 뽑힌 아들, 어렵게 태어난 둘째 2살 딸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 어려운 형편을 겪었고 평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삶은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함이 가장 큰 행복이고 또 미래를 발전적으로 꾸려나갈 희망이 있다는 것 그저 평범한 게 가장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