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서 왔다간다. 그냥 볼 수 없음에 슬프지만 너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고자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돌아간다.
잘 지내고 있지?. 꿈에서 온몸에 핏줄이 빨갛게 섰고 많이 힘든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더라. 나는 그냥 물었어.
왜 그랬어? 뭐가 힘든거였니?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될까?
형님. 저는 괜찮아요. 항상 감사합니다. 형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나한테 해봐. 니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나 아니면 니가 다하고 가지 못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얘기해봐. 내가 도와줄께.
아니에요 형님. 저는 괜찮아요.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니가 혈색이 돌면서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돌아왔어. 그러곤 다시 니가 지내는 곳으로
돌아갔어. 나는 답답한 마음만 커 가는데 거기서는 편한건지 가볍게 돌아가더라고. 한편으로는 좋았어.
그곳에서는 짐을 내려놓고 잘 지내는 것 같았거든.
돌이켜 보면 우리 둘째아니 첫 돌이 4.16일이었고. 니 생일은 4.17일이었어. 니가 죽기 전에 내가 잘 지내냐고
전화했을 때 니가 주말에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둘째아이 돌이라 그다음 주에 하자고 했고. 우리는 가족들만
모시고 조용히 돌잔치를 하려고 해서 너를 부르지 못했었어. 그때 그냥 와서 밥먹 사진이나 찍어달라고 할걸. 잠시만
들러서 같이 식사하고 가라고 할걸. 수없이 후회하고 후회했어. 너는 생일 며칠 전에 하늘나라로 갔고 나는 생각지도 못한 니 결정에 너무 많이 놀랐고. 밥 한 끼 하지 못하고 너를 보내서 많이 미안했어.
너무보고 싶어서 찾아갔었는데. 니가 군에서 노력한 대가로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더라. 군 생활을 오래한 사람을 위한 자리에 보관되어 있더라고. 군 생활하면서 니가 견딘 상급자의 폭언 욕설로 인해 힘들어할 때 나는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는 전역을 선택했고 군을 떠났잖아. 같이 진급해서 생활했으면 좋았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너는 그로 인한 우울증이 계속된 건지 상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었는지, 어려운 선택을 했었고, 내가 더 도움을 줬었어야 했었나 봐. 장례식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를 보내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군대가, 그렇게 상처를 줬었던 군대였는데 그곳에서 같이 지내던 너를 알고 지낸 전우들이 장례식장을 꽉 채웠었어. 이게 군인들이 사는 참 어이없는 삶인가 싶더라고. 상처를 주고 삶을 포기해서 가는 마지막 날에 어쩌면 니가 선택한 제2의 세상을 가게 만든 군인들이 니 마지막날 장례식장에 와서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어. 그들은 니가 아꼈던 사람이었을 거고 너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람들이었을 거야. 군에서 보낸 시간을 보상받듯 납골당에 다른 자리에 모셔진.. 참 아이러니한... 마음이 복잡했어. 너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은 그저 죗값을 다 치른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군 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만 슬퍼하고, 또 형식적으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와서 있는 사람들도 있고,
나도 이제는 덜 슬퍼하고 가슴에 묻고 평소처럼 살아가보려고 해. 니가 가끔 꿈에 와줬으면 좋겠어. 내가 행복하게 지내도 너는 충분히 이해해 주고 응원해 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너무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어.
어떤 게 옳은 건지 잘하고 있는 삶을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니가 어떤 선택을 하던 존중 하니까. 그냥 나도 평소처럼 지내기로 했어.
어쩌면 가장 큰 상처를 줬었던 곳이 니가 더 높은 곳을 향해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바쳤을 노력의 전부였을거고
그곳에서 이루지 못한 꿈이 패배의식처럼 못 견디게 괴로웠을 너를 생각하면서. 선배로서 너를 더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큰 대못이 되어 박혔어. 그런데 있잖아. 너는 군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오빠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니 삶은 니가 생각했던 것보다 찬란히 빛날 수 있었음을 보증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많은 걸 내게
베풀고 가줘서 고맙다. 기도할게. 니가 하늘에서 지켜보다 우리가족의 불행을 막아 줄 수 있다면 꼭 도와주고, 항상 고마웠던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내삶이 그저 한줄기에 빛처럼 빛나는 게 니가 좋아했던 나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많이 고맙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