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천천히 가자

by 써니소리

나는 차를 몰고 다니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타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 명절 연휴에는 차가 많을 것 같아서 어렵게 표를 구하느라 코레일 어플에서 새로고침을 몇 시간 동안 눌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이 갈 수 있는 표를 어렵게 구했었다. 차를 타고 교통체증을 견디며 어렵게 운전하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타기 위해 예약하고 많은 짐을 들고 기차역이나 버스정류장에 가는 힘듦을 더 좋아한다.

기차에 타니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람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둘째가 어리다 보니 울음을 달래려고 기차를 돌아다녔다. 기차는 중간에 칸칸에 화장실, 수유실, 자판기 설치된 곳이 각각 다르다. 그래서 필요한 시설이 어느 칸에 있는지 알아두면 좋다. 기차 안에는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 전화통화를 하다가 잠든 사람, 자녀와 크게 통화를 하는 어르신, 맨발로 신발을 벗어둔 채 앉아계신 분들도 계시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 그중에 보이는 꼬맹이들은 연휴가 길어서 인지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는 아이들도 간간이 보였다. 할머니집에 가면 사랑을 듬뿍 받고 놀기만 할 것을 알기에 괜한 걱정으로 부모가 기차에서 만큼만이라도 책 읽기를 시킨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는 아이였다면 나중에 크게 될 사람일 것이다. 둘째를 앉고 기차내부 이곳저곳을 걷고 있는데 승무원이 지쳤는지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쉬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재빠르게 일어났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쉬는 승무원이 불편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승무원 규칙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인사를 건넸다. '연휴라 일이 많아 힘드시죠? 덕분에 편하게 고향에 가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승무원의 표정은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상당히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눈인사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인사를 줄 곧 잘했었다. 할머니랑 같이 자란 탓에 인사만 잘해도 어르신들에게는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을 로 알았다.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아파트 관리원이나 환경미화원, 경비아저씨를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걸 보고는 아들도 항상 따라서 인사를 한다. 단지 인사만 건네도 기분 좋은 일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승무원은 그 뒤로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우리 둘째 딸에게 이쁘다고 귀엽다며 좋은 소리를 한껏 건넸다. 아마도 내가 전달한 인사가 고맙게 느껴졌는지 계속해서 좋은 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몇 년 만에 고향에 가는지 생각도 나질 않는데 친절한 승무원을 만났다. 사실 승무원이 쪼그리고 앉아서 쉬는 모습을 나는 처음 봤었다. 그들도 나름에 힘든 점이 많을 테고 연휴라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소중한 딸이자 가족이었을 텐데 연휴를 맞아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을 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신이 나서 이동을 하는데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기차에서도 많이 배웠다. 나만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닌 것을. 그리고 오래간만에 친구를 잠깐 만났다. 가정이 생기면서 어릴 때처럼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놀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할애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행복이 있어서 그런 시간들이 아쉽지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갔는데 차를 마시며 나눴던 얘기는 건강과, 직장 그리고 재테크 얘기뿐이 이었다. 나는 군 생활을 해왔고 아르바이트는 상당히 많은 종류의 일들로 많이 했었지만 직장생활은 잘 모른다. 그들의 직급이나 월급도 잘 모르는데 듣고 있으면 재미있었다. 주로 상급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들어도 부당한 게 많았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상급자 입장에서도 들어줘야 공평하기에 다 믿지는 않았다.
상급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다들 자신의 힘듦을 먼저 이야기한다. 나도 공부를 잘하지 않았지만 나보다도 더 공부를 못했던 친구들 중에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내 봉급을 하루에 버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는데 그중 한 친구는 애가 생기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하다가 첫째를 출산하고 둘째는 쌍둥이를 낳아 딸을 3명 키우고 있었다. 돈도 잘 벌고 애도 낳고 어려움이 없었을 거 같았는데 작년부터 재수 씨가 유방암 4기를 진단받아 머리를 자르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아버지가 하는 사업을 물려받아 잘 지내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해당 사업을 삼촌이 물려받아 가족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업이 어려워져 힘들다고 했다. 최근에는 회복을 해서 사업이 원활히 돌아가고 있는데 그 친구의 재수 씨도 유방암 2기를 진단받았다고 한다.
내가 부럽다고만 생각했던 이들에게도 이렇게 불행을 가지고 살지만 나는 나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을 접는다. 그들이 불행하다고 얘기하는 게 상황이 걱정이 안 되는 게 아니지만 나는 직접 흉선암 3기를 진단받아 극복 중에 있어 충분히 잘 견뎌낼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직접 아픈 사람의 마음을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한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직접 만나서 들은 내용이 아니라 모르는 척 넘어가고 잘 해결되길 조용히 응원하며 기도를 해본다. 나도 올해 7월에 또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된다. 100% 완치 판정은 못 받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 얘기하던 중 어릴 때부터 부잣집에서 자란 친구 한놈이 늦게 왔다. 아버지가 건물을 물려주고 돌아가셔서 행복한 줄만 알았던 친군데 머리숱이 많이 비어있었다. 부자도 탈모에는 장사가 없는가 보다 생각을 했다. 이 친구의 어려움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건물을 물려받으려면 상속세를 내야 되는데 상속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과 건물 규모가 상당히 커서 관리하는데 모르는 게 많아 힘들다는 것이었다.
설연휴에 몇 년 만에 만나서 듣는 소식이 어떻게 다들 어려움만 가득 있는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한 번만 돌아보고 생각해 보면 어려움이 아닌 것도 많은데 사람인지라 다들 자기가 가장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을 하며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얘기를 들으면서 암이 빨리 발견돼서 일찍 치료를 하게 되었고 성실한 아내를 만나서 차곡차곡 재테크를 해서 집을 샀고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행복한 일도 많았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탈모가 없으셔서 탈모인으로 살 확률이 상당히 낮다. 물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검증이 되지는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평범하지만 평범한 게 가장 큰 행복임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덧 나이가 40대가 되었지만 아직 많이 어리고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나서보니 정신연령은 어릴 때 그대로라는 걸 느꼈다. 아직 철이 덜 들었는지 친구들을 만나 옛 추억에 젖어 있던 건지 아직 나이에 비해 많이 어린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겉은 나이보다 더 늙었고 일상생활에 절어 있는 대한민국에 평범한 가장이지만 잠시나마 느끼는 여유가 좋았다.

* 가정, 건강, 직장, 재테크, 탈모, 골프 =

40대의 공통적인 관심사.


인생은 결국 누가 재산을 많이 모았느냐

보다 아주 건강하고 탈모가 없는 평범한

사람의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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