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가 걸린 블라인드에 아들이 태어나서 갔다왔던 나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열한 살인 아들이 다녀온 곳은 6개 국가였다.
너무 어릴 때 다녀온 미국이나 홍콩은 잘 기억은 못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이나 홍콩에 디즈니 랜드 정도는 기억을 했다.
스티커를 하나씩 늘려가면서 여행을 다니면 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붙여봤는데
대화거리가 돼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는 어디가 가고 싶은지 어디는 꼭 가보고 싶은지 얘기를 했다.
둘째가 어려 비행시간이 짧은 쪽을 먼저 가고 더 크면서 멀리 있는 곳을 가자고 했다.
나는 볼리비아에 우유니 사막을 꼭 가보고 싶다고 했고 아들 녀석은 꼭 같이 가보자고 했는데 비록 다 가지는 않았지만 다 가본 것 같았다.
아들은 항상 아빠가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최대한 하고 싶은 걸 다해주려고 노력했다. 학교에서 트러블이 있을 때도 상담을 드렸고 체육대회나 기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석했다.
아들은 아빠가 어느 정도 열심히인 아빠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되면 프렌디(frendy)가 되고자 했다. 아들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게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어느 선까지 친구처럼 지내야 하는지 가끔은 호된 교육이 필요할 때는 어디까지 감당해야 되는지 고민이 된다.
그래도 아빠와 놀면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아빠와 아들이 된다는 건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신이 내려주신 인연이기에 아들에 입장에서 좋은 아빠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도
없었고 부유하고 능력 좋은 아빠를 선택할 수도 없었다.
태어나보니 아빠라는 사람이 나였던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풍족한 형편과 탁월한 머리를 줬으면 좋으련만 지극히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내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한 가지 아들은 낳기 6개월 전부터는 비타민, 엽산, 견과류 등 몸에 좋다는 건 다 챙겨 먹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유전자를 주고 싶었다.
맞벌이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어린이집을 다니고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갔는데
지금은 동생이 태어났다. 조금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동생은 아들 녀석이 몇 년 동안 낳아달라고 해서 우리 부부가 큰 결심을 해서 어렵게 낳았다.
슈퍼만 같은 아빠, 프렌디 한 아빠가 되고 싶지만 나도 아빠가 처음이기에 잘 모르는 게 많다.
그래도 내가 어릴 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은 최대한 가르쳐주고 배우게 했다.
또한 유명한 브랜드에 있는 신발은 많이 신겼었다. 나이키에 조던, 아디다스의 이지부스트, 리복에 퓨리, 아식스에 오니츠카타이거, 골든구스 등 비싼 신발도 제법 많이 신겼다. 그냥 내가 기분 좋자고 신겼었던 건데 다들 좋다고 하니 좋은지도 모르고 신발을 아껴 신었던 아들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다녔던 학교와 맛있는 집도 같이 구경하고 다니고 전기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수원에 손흥민 선수가 뛰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 티켓팅도 했었고
워터페스티벌 기간에 KT위즈 경기를 보기 위해 티켓팅에 노력을 했었다.
씨름도 직관을 해봤고 최현우 마술사의 공연도 직관을 했었다.
시간을 투자한 만큼 아들과 추억은 많이 쌓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아빠로서 부족한 점도 많다.
저렇게 했던 노력이 과연 아들이 원해서 했을까?
내가 좋자고 좋은 아빠 코스프레처럼 노력한 것인가 할 때가 있다. 몸이 힘들 때 배드민턴을 치자 고하면 덥다고 내가 안 가고 오히려 하기 쉬운 것들을 사소하게 못해준 거 같았다.
아들의 입장에서 좋은 아빠는 저런 간단한 것들을 잘해주는 아빠가 좋을 수도 있는데
단지 내가 원해서 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