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소리 Nov 25. 2024

오랜 친구의 말 한마디

오래두고 가까이 사귄 벗

늦은 저녁에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 요새는 술을 많이 드시지 않는데 무슨일이 있으셨는데 술에 완전히 취한 목소리로 횡설수설 하면서 누가 아버지를 도와줘서 감동을 했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늦은 시간이라 먼저 자고 있던 아내도 놀란 듯 일어나 통화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가족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장손이자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아닌 그냥 어렵게 사는 부모님 걱정과 동생 걱정을 유난히 많이 하는 편이었다. 대학교 시절에도 몇 번이고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운전을 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최대한 도우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식당에서 일을 하는 엄마를 모시로 가기도 했고 항상 좋은 아들이 되고자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늦은 시간에 술에 취한 아버지 전화가 많이 걱정이 됐다.

차분히 다시 전화해서 물었더니, 비가 오고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혼자서 걸어 오시던 중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아버지를 보고 가족들을 잠시 내려두고 우리 아버지를 집에까지 모셔다줬다고 했다. 친구는 아버지가 하청을 받아 하던 공사에 사람이 없을 때도 나랑 함께아르바이트 삼아 같이 아버지 일을 도왔었고, 우리집에 오면 항상 넉살좋은 태도로 밥을 두 공기씩 먹으며 아들처럼 놀다가곤 했던 친구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친구 녀석이 밥을 많이 먹는다며 뭐라고 하기도 하셨다. 그래도 싫지 않으신 듯 집에 놀러 오면 잘 챙겨주곤 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일방적인 말만 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몇 분 뒤 엄마랑 통화를 했을 때는 아버지가 집에 잘 들어와서 잘 자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울지 않으셨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많이 우셨다. 내가 크면서는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항상 할머니를 원망했었다. 6남매 중에 장남을 자라셔서 일찍부터 일을 시키셨고 막둥이라고 불리는 우리 작은아버지를 공부를 시키고 많이 지원을 해주셔서 아버지는 항상 서운해하셨다.

그런데 술에 취해서는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울먹거리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속상했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말도 없이 그리워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기에 많은 미안함도 있었다.


친구 녀석에게 바로 전화를 했을 때는 가족들하고 잠시 지나가는 중에 아버지를 알아보고 비가 와서 바로 모셔다 드렸다고 하며 내일 전화하자고 걱정 말고 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너무 고마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인데 다행히 아버지를 알아보고 모셔다 드린 게 너무도 고마웠다.


다음날 전화했을 때에는 아버지가 고모네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던 중에 친구를 만났고 처음에 술에 많이 취하셔서 못 알아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때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알아보게 되었는데 친구 녀석에게 내 자랑을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자랑할 것도 없는 아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친구 녀석에게 자랑을 하셨을까.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사고로 아버지 친구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현장에도 친구 녀석이 있었다. 물론 같은 현장이 아니었기에 같이 있지는 않았으나 그때 같이 일해준거에 대해서 아버지는 항상 고마워하셨다.

술에 취해서 만나셔서 평소에 담아두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많이 하신 것 같았다. 나는 너무 고맙다고 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고 같아서 좋았어. 아버지가 없는데 오랜만에 따뜻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발인까지 보고 납골당에까지 따라갔다 왔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갔었는데, 친구 녀석의 저 한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많이 고맙고 미안했다. 친구도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말로 표현하기엔 우리가 많이 커버려서 혼자 마음속으로 그리워 한걸 알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로 인해 친구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우리 아버지는 또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사람이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건 참 슬픈 일이고,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도 엄마를 그리워하시고 계셨고, 괜찮다고만 했던 친구 녀석도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 후배 녀석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고 있었다.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나이가 더 들어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인 것 같다.

오랜만에 친구에 한 마디가 마음을 흔들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한마디가. 힘을 더 내고 살아야 되겠다는 충분한 울림을 줬다. 아직 나는 아버지와 엄마는 살아계시고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계속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