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하 Nov 14. 2024

텍스트 레터 02

좋은 배우자에 관한 간소한 믿음이 있다면요...

사실, 마틸드는 늘 주먹 쥔 손이었다. 로토에게만 편 손이었다.

로런 그로프 『운명과 분노』

 배우자의 인연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남편 혹은 어떤 아내가 좋은 배우자일까? 그에 관해서라면, 누가 무슨 말을 속시원히 할 수 있겠는가. 너무 방대한 이야기는 건드려지기 어려운 법이다. 배우자와의 관계는 살아 숨 쉬는 무엇 같아서, 나, 상대방, 켜켜이 쌓이는 시간, 함께 경험하는 삶의 파편, 이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치는 변화에 가깝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나면, 언젠가 관계의 끝도 온다. 둘이 하나인 쌍에서 기어코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사별. 영원한 이별. 관계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 모든 장면을 마주한 이들의 회상은 어떨까. 끝. 이 짧은 글 속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모두,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녀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예전에 술자리에서 남편이 이런 말을 했던 모양이다. 사고가 났고, 누군가 크게 다쳐 내장이 다 튀어나왔다면 너무 무섭고 두려워 손도 댈 수 없겠지만 만약 그게 아내라면 주저 없이 내 손으로 내장을 수습해 그녀 몸 안에 넣어줄 거라고.

같이 산 세월은 37년인데 백 년이고 천 년이고 함께였다는 기분이 든다. 고목에 뚫린 큼직한 구멍 속,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 눅눅한 솜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혼자가 된 나는 지금, 어두운 그 구멍 속에 가만히 숨어 있다.
둘 다 작가다 보니 열띤 토론이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잦았다. 헤어지네 마네 자그락 댈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다음 날이면 여느 때처럼 나란히 앉아 아침밥을 먹는 게 신기했다.
 
고이케 마리코 『달밤 숲 속의 올빼미』

부드러운 외피 안에 자리한 심장이 만져지기라도 할 듯, 한 손으로 가슴을 가만 움켜잡고 이 문장을 읽어나갔다. 그 처연한 장면은 제멋대로 내 안에서 상상되었다. 담담히 내게 가장 익숙한 살과 피를 만지며 온전한 그를 되찾아 안전한 곳으로 숨기고 싶다. 서두를 것이다. 찌릿찌릿한 통증과 가쁜 숨과 눈물.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친밀함이라는 의미로 좁혀둘 수도 없다. 이건 명백한 단어의 한계, 저 문단 그 자체로만 이해될 수 있다. 나는 이런 것이 서로 삶의 무늬가 되어버린 부부라고 생각한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함께였다는 기분. 나와 분리되지 않는 신기루. 같이 살아낸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관계. 이것은 '마땅히 그럴 수 있는 사람'과의 이야기이다.

텔레비전 소리를 낮춘 병원은 조용했다. 넓은 창밖으로 절반쯤 진 저녁놀이 보였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침대 옆 작은 의자에 평온하게 앉아 그를 바라보는데 아이처럼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끊어서 작게 말했다.

"가여워라
나는 영원히
당신 편입니다."

"당신이 가엽다고."

"나는 당신 편이야. 그 말을 하고 싶었어."

죽은 자는 모두 혼자다. 현세의 인연과 관계 모두 소멸된다. 그러나 몇만 명인가 몇십만 명에 한 명은 속에서 특별히 인연이 깊었던 자의 영혼이 오기를 그곳에서 기다린다고 한다.
……기다리다가 결국 못 만나게 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그 깊은 동굴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그가 혼자 어두운 동굴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가여워서 어쩌나.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자신을 '가엽다'라고 여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 자체가 인간의 행복이라고. '사랑한다'는 말보다 '가엽다'는 말이 인간의 감정 중 가장 거대하고 무겁고 귀중한 감정을 표현한 말이다.

다나베 세이코 『남아 있는 날들의 일기』

"배려심이 있으면 좋겠어요." 상대를 위하는 마음, 배려심, 글쎄 그보다 진득한 것도 있지 않을까. 더 눅진한 것 말이다. 예컨대, 지지하는 마음.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내가 그려보는 것. 알아차리게 된다면, 진심을 다해 바라야 한다. 그가 다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가장 그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나도 온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이면에 '가여움'도 있다. 불쌍히 여기는 그런 가뿐한 가여움이 아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알게 된 한 사람의 아픔을 예견하는, 저릿한 가여움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그 사람이 가엽게 여겨진다면, 절대 가벼운 감정이 아닌 것이다.

오,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

결혼 후, 배우자와 나 사이에 열정과 사랑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이는 많다. 열정과 사랑. 하지만 그 뜨거움을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함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신의, 약속, 책임, 연대, 성실, 공생, 선의, 무수한 등등. 사랑 만으로 선택할 수 없듯이, 사랑 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관계에 주어지는 이 뜻밖의 선물들이야말로 끝이 나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가 내 삶에 무엇을 주었는지. 어떤 빈틈을 부단히 메우고 있었는지. 우리들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면, 그럴 수 있도록 해주는 무엇인가가 지금, 여기,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남편을 볼 때면, 내 삶의 무늬 같다. 결혼 생활은 작은 소란들로 요동 치지만 모든 소음을 잠재우고 그를 떠올리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드러내는 고유의 무늬가 되어있다. 이서희 작가의 『이혼일기』를 읽던 신혼 초, 한 구절이 마음 깊이 담겼다. 그녀와 남편의 이야기. 행복을 나누기에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지만, 불행을 함께 하기에는 나쁜 사람이었다는 말. 나와 남편은 취향도, 이상도, 부모님들로부터 받아온 양육 환경도, 당연히 기본 성격 특질도, 나열할 수 있는 수많은 특성 그 어느 것도 비슷하지 않다. 나는 왜 그였을까? 내가 그를 택했을 때, 나는 검푸른 하늘이 불길하고 아래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진 절벽을 떠올렸다. 세상은 곧 끝이 날 것이고 나는 그와 그곳에 서 있다. 그때의 내 심정은……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마지막이 될 것을 알고 있는데 나는 그와 담담히 "산다는 건 어땠어요?", "오빠 괜찮아요, 무섭지 않아요?", "이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손을 잡은 채로. 나는 언제나 최선의 상황보다 최악의 상황에 놓인 둘을 상상했고, 그 평온함은 모든 질문의 답이 되어주었다. 결혼을 하고, 지난한 일상이 얽히고, 속이 시끄럽고, 서로에게 파괴적일 때조차, 나는 같은 상상을 하며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그와는 행복을 상상하기보다 불행을 떠올렸을 때, 더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 이게 도움이 될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의 노인정신과 전문의 와다 히데키는 부부 중 한쪽의 정신이 흐려지거나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를 상상하고 배우자의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는지 스스로 묻고 답해보라는 조언을 했다.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말이라 누군가는 반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보란 듯이 노란색 형관펜을 작작 긋고 별표를 그려두었다. 자고로 배우자란, 가장 밑에서, 아주 낮은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어야 한다. 이것이 좋은 배우자에 관한 내 간소한 믿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텍스트 레터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