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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Dec 08. 2022

서울의 오래된 구옥을 고쳐 살아가는 이야기

호스트 인터뷰 : 남의집 서울 옛동네에 작은 집짓기 레이님

남의집 서울 옛동네에 작은 집짓기 모임

레이 호스트

인문학을 전공한, 집과 건축에 대해서는 무지렁이에 가깝던 사람.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서울 도심에 있는 작고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집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기쁨과 경험을 남의집에서 나누고 있는 호스트 레이님을 만나고 왔다.


취향이 담긴 동네 그리고 집

남의집 모임의 주제이자 장소이기도 한 집을 소개해주세요.

1층은 응접실이자 부엌이자 서재 공간이에요.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에요. 가끔 친구네 가족이 놀러 오면 아이들이 놀라곤 해요. “이 집은 거실에 TV가 없어!” 하고요. 커다란 책장과 책상을 두고 이곳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모임을 하기도 해요. 손님들이 이용하는 화장실도 1층에 있죠. 서재와 응접실에 좀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한 대신, 부엌은 최소한으로 꾸렸어요. 집에서 뭘 잘 안 해 먹거든요.

2층은 옷방과 침실, 부부를 위한 욕실이 있고, 사이 공간을 작은 시네마룸으로 꾸몄어요. 가운데 통로 공간에 소파를 두고 벽에 스크린을 쏴서 영화를 봐요. 여기도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고, 특히 스포츠 경기를 볼 때는 100인치에 가까운 화면에서 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3층은 옥상이자 테라스공간이에요. 옥상에 작은 텃밭을 가꿔보기도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봄/가을에는 종종 바베큐를 해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 차를 마시기도 해요. 야심 차게 준비했는데 날씨가 잘 맞아야 쓸 수 있는지라 생각보다 자주 쓰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 집은 원래 2개의 세대가 살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요. 1-2층과 옥상은 저희가 사용하고, 반지하가 있는 아래 공간엔 세입자가 살 수 있는데 저희는 반지하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방 두 칸을 각자의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고, 가끔 손님이 오면 묵고 가시는 공간으로 쓰기도 해요. 


취향을 만드는 일을 삶의 방식을 짓는 일이라고 본다면, 내가 살 공간을 짓는 일은 취향 짓기의 끝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어쩌다 주택을 고쳐서 살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여느 부부들처럼 내 집 마련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아파트를 보고 있었어요. 최근처럼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에도 아파트 가격은 상승세에 있었죠. 이런저런 집을 보는데, 저희가 가진 돈으로 원하는 동네에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사는 게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시선을 주택으로 돌렸어요. 상가 주택 형태라면 주거를 해결할 뿐 아니라 현금 수입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늘 자본주의적인 선택을 했다고 얘기해요. 서울 안에 사는 게 편하기도 할뿐더러, 미래 가치를 고려했을 때 서울 땅이 가치 있다는 걸 고려해서 결정했어요. 서울 땅값은 지속해서 올라간다는 걸 생각해서 땅에 투자하기로 한 거죠. 그러니까 주택을 샀다기보다는 서울 땅을 샀다고 생각해요.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을 택한 것은, 오래된 집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와 역사를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해서예요. 다 허물고 신축을 한다면 완전히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희는 원래의 공간이 가진 모양과 거기서 오는 고풍스러움을 살리고 거기에 저희의 취향을 얹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게 이 동네에 녹아드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요.


주택을 고치고 살면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요?

공간과 건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점이요. 이 모든 관심과 지식은 사실은 이 집이 준 거라고 볼 수 있죠. 그전에도 공간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집을 설계하고 건축하면서 보이고 아는 것들이 많아지니 계속 관심을 두고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왜 이 집이었을까’ 궁금해지는데요.

모임에 오신 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는데요. “집주인이 오래 살았던 집이 좋다”라는 이야기예요. 우리 집은 집주인 할머니가 되게 오래 사신 집이에요. 할머니의 아드님이 직접 지어준 집이었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정성스레 지었겠어요. 또 아들이 지어준 집에서 할머니가 집을 얼마나 아끼면서 살았을까 싶고요. 그런 부분 때문에 지금의 집을 선택했고, 또 리모델링을 결정할 때 이 집을 많이 바꾸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해요.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집은 제게 가장 큰 안식처이고 에너지 부스터예요. 게다가 단독주택의 특성상 층간 소음도 없고, 대문을 닫고 들어오는 순간 이 조그만 건물 안에는 나와 우리 가족뿐이거든요. 그 사실이 큰 안정감을 줘요. 업무 특성상 커뮤니케이션이 많고 스케줄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집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모든 걸 내려놓고 푹 쉰다! 싶은 거죠. 그리고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제가 고르고 선택해서 배치한 것들이에요.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한 공간에서, 다음 날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천천히 채우는 거죠.

집의 터를 이루는 '동네'도 중요한 부분일 것 같아요. 사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옛 서울의 바로 바깥, 한양도성의 성곽 근처예요. 오랫동안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동네이니만큼 옛날 동네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동네죠. 골목 곳곳에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옛날 오락실, 신점 집과 함께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가 자리 잡고 있어요.


대학가가 가깝다 보니 대학생들도 많지만, 오래된 동네라 어르신이 많이 계시고 그분들이 키우시는 작은 텃밭이나 화초들이 여기저기 있어요. 다양한 요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동네예요.


'이 동네에서 살고 싶다' 마음먹게 된 순간은 언제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강 아래쪽 동네에 살았는데, 서울 원도심의 분위기를 좋아해서 주말에는 대부분 강북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대학로도 자주 가는 동네 중 하나였죠. 대학로 근처에 오래된 빵집이 있는데, 거길 정말 좋아해요. 하루는 누가 슬리퍼 신고 빵을 한가득 사 가는 모습을 봤어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슬리퍼 신고 여길 오고 싶다' 생각했어요.


이곳에 터를 잡게 된 이유를 말하자면, 당연히 이게 전부는 아니고요. 우선 조건이 맞아야 했죠. 예산이 맞아야 하고, 다음으로 직주근접이 중요한 요소였어요. 또 제가 눈 오는 날 언덕을 걷다가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무조건 평지를 고집했는데 이 동네가 모든 요소를 충족했어요.

원도심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박완서 작가를 되게 좋아하는데, 작가님이 이 라인에서 사셨었어요. 선생님 소설에 보면 서울의 오래된 동네 지명이 등장하고, 거리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거든요. 소설 속에 우리 동네 이름이 그대로 등장할 때, 동네에 쌓인 시간을 느끼고 다르게 보게 돼요. 과거의 이야기에서 동네를 발견하면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잖아요. 보이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애정도 커지는 것 같아요.


집, 취향을 나누는 공간으로

'집'을 주제로 남의집 모임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주택을 사고, 고쳐 짓고, 관리하며 살아가는 과정에 대해 잘 몰라서 고생한 경험이 있어요. 이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집이라는 게 취향과 감성 같은 낭만적인 이유로만 선택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특히 단독 주택의 경우에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현실적인 부분이 많거든요. 주택 구입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제가 경험한 시행착오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하다 보니 벌써 11회차나 진행했더라고요.


꾸준히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해 모임을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지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에서 얻는 자극과 사고의 확장이 가장 큰 동력인 것 같아요. 교육/기획 일을 하다 보니 어떤 식의 인사이트나 아이디어가 지속해서 필요하거든요. 또 정보를 알려주는 일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도움이 될 만한 사이트는 어디가 있고, 요즘 어떤 이슈가 있고, 법규가 바뀐 건 뭐가 있는지. 모임을 하면서 옛날 얘기를 하면 안 되니까 정보 업데이트를 해요.


다회차 경험으로 쌓인 호스트님만의 모임 진행 팁이 있다면요?

우선 다들 낯설어하는 초반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차를 다양하게 대접해요. 카페인을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많으니, 미리 모임 신청서에 디카페인 요청에 대해 확인한 다음에 필요하다면 준비해 놓아요. 간단하게 차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향을 맡게 해 드리고, 좀 더 흥미를 보이는 분들이 계시면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죠.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을 차에 맡기는 셈이에요.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가 오가는 모임이기 때문에, 나름의 PT 자료로 정보를 정리해서 보여 드리면서 이야기를 나눠요. 그렇지 않으면 끝나고 나서 ‘어떤 얘기를 했더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를 저도 많이 겪었거든요. 

그리고 분위기가 유난히 좋은 날에는 원하시는 분에 한해 타로를 봐 드리기도 해요. 취미로 보는 타로이기 때문에 타로카드 점괘 자체보다는 다른 데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깊이 있고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용도로 활용해요.


보통 제가 주말에 많이 진행하니까, 일부러 시간 내어 와 주신 분들께 기분 좋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해 드리고 싶고, 그래서 지금도 다양하게 모임 운영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집과 관련된 이야기로 마무리해볼게요. 어떤 분들이 집을 고쳐서 살면 좋을까요.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가? 의 문제가 편리함보다 중요한 분들은 주택을 경험해보시면 좋겠어요. 아파트와 주택을 비교해보면, 아파트는 공동관리가 되니 편리하고 깔끔해요. 그런 점에서 살기에 참 좋죠. 저도 어렸을 때부터 쭉 아파트에서 살았었어요. 근데 아파트는 일관된 구조를 가졌잖아요. 우리 집에 가든 남의 집에 가든 친구 집에 가든 똑같이 생겼어요. 인테리어 같은 경우도 대부분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가고요. 다 비슷비슷하고 크게 다를 부분이 없으니까, 그 안에 있는 가구나 전자제품이 어디 브랜드 제품이고, 얼마 짜리고, 이런 부분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선택의 범위, 그러니까 차이를 둘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지 않으니까요. 획일적인 공간에 있다 보면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요.


집이라는 공간이 결국은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잖아요.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공간에서 생각의 확산을 하도록 만드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레이 호스트님 남의집 모임 보기 > https://bit.ly/3Y587O0


*내 취향으로 모임을 열고 싶다면, 호스트가 되어보세요! > https://bit.ly/3iLgw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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