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여인

by 기림


하멜른 사람들은 쥐를 없애준 대가를 사나이에게 주지 않았다.

분노한 사나이는 피리를 다시 들었고, 이번엔 동네 아이들이 그 음색에 홀린 듯 따라나섰다.

아이들은 그의 뒤를 쫓아 언덕 속 동굴로 하나둘 사라졌다.

마지막 아이가 들어가자 문이 닫히고,

그 이후 아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이다. 플루트를 전공한 나는 가끔 그 자리에 나를 겹쳐놓는다. 그러면 피리를 쥔 이는 사나이가 아니라 여인이 된다.


피리 부는 여인은 세상에 맞서는 방식을 상상한다.

글자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충동만으로도 묘한 위안이 깃든다.


글을 빼앗긴 세상은 부러진 언어들의 비명소리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절규를 목격하는 순간, 깊숙이 묻어두었던 응징의 마음은 서늘한 미소로 피어나고,

활자들이 한 줄씩 사라지는 순간에는 갇혀 있던 울분이 웃음으로 뒤집힌다.


언덕 문 너머에는 아무도 모르는 세계가 있다. 눈빛이 한 편의 글이 되고 숨결은 날카로운 시로 번지며, 심장의 울림이 문장을 대신하는, 감각만이 진실을 전하는 세계. 여인은 그곳으로 아이들을 데려간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이전의 세계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녀는 떠올린다. 글자가 없던 이집트나 앙코르와트 같은 옛 문명에서는 말과 몸짓, 노래나 의식 같은 살아 있는 방식으로 기억을 남겼다는 것을. 기록보다 삶이 먼저 증언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활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에는 글은 사람을 가르는 문이 되었다. 그 문은 열쇠가 있어야만 열린다. 난독증이 있는 여인은 열쇠 꾸러미를 끝까지 뒤져 마지막에야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지만, 그때는 이미 닫힌 뒤다. 끝내 그녀의 언어는 세상에 닿지 못하고, 누구도 듣지 못한 채, 그 자리에 홀로 남는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읽을 줄 알잖아.” “조금 더 노력해 봐.” “집중하면 되지.” “두드려 봐.”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들은 모른다.


종이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어야 할 글자들은 그녀의 시선을 피해 사방으로 달아나고, 서로의 발목을 물어뜯듯 뒤엉킨다. 어떤 날은 그 글자들이 칼끝처럼 선 모서리로 그녀의 내장을 긁어내리기까지 한다. 피가 솟구치는 듯한 뜨거움이 눈 뒤에서 터지면, 여인은 좁쌀만 한 알갱이들 앞에서 맨몸으로 포박된 죄수처럼 숨을 몰아쉰다. 결국 그녀는 읽는 자가 아니라 글자들에게 사냥당하는 몸이 된다.


피리 부는 여인은 연주를 멈추고 사방을 천천히 둘러본다. 그리고 글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도망칠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문장은 다시 그녀의 곁으로 와 목덜미에 천천히 숨을 얹는다. 그 떨림은 위안에 가깝고, 아프도록 달콤하다. 상처를 핥듯 스며드는 그 접촉에 그녀는 또다시 무너지고, 또다시 그 어깨에 기댄다.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과, 함께하고 싶다는 갈망이 한 줄의 미열처럼 몸을 타고 오른다. 결국 여인은 알아버린다. 이 욕망은 포기가 아니라 귀속에 가깝다는 것을.

문장은 그녀를 삼키면서도 깊은 곳에 슬픈 입맞춤을 남긴다.




하멜른 사람들은 쥐를 없애준 대가를 여인에게 주지 않았다.

여인은 피리를 다시 들었고, 이번엔 동네 아이들이 그 음색에 홀린 듯 따라나섰다.

피리 소리를 따라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한 줄기 희미한 꽃잎처럼 흔들렸다.

버려진 자와 따라나선 자들이 함께 만드는 이 느린 행진 속에서

슬픔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고, 희망은 낯설도록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