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의 시선이 단상 아래를 훑는다. 법정에는 방금 토해낸 젖비린내와 차갑게 벼려진 금속성 냄새가 기이하게 뒤섞여있다.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바닥에 누워 있고, 그 양옆에 여인 A, B는 날카로운 침묵을 맞대고 서있다. 왕이 고개를 돌려 호위병을 바라본다. 장내의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왕 “여봐라, 칼을 가져오너라.”
칼날이 햇빛을 받아 번뜩이자 구경하던 이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켠다.
왕 “두 여자가 서로 제 아이라 우기니 방법이 없구나.
아이를 정확히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나머지 반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말이 끝나자, B가 차갑게 미소 짓는다.
B “옳으신 결정입니다.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면, 공평하게 나누는 수밖에요.”
그 순간 A가 비명을 지르며 아이 위로 몸을 던진다.
A “아니옵니다, 왕이시여! 제발… 아이만은 살려주소서!
저 여자에게 아이를 주어도 좋으니, 이 아이의 목숨만은 제발…”
절규하는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왕이 손을 들어 제지한다.
왕 “칼을 거두어라. 아이를 죽이지 말라!
자식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 저 여인이 진짜 어머니다!”
객석에서는 안도와 찬탄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사람들이 A를 에워싸며 환호하는 사이, 오직 B만이 군중 너머의 왕을 서늘하게 응시한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판결의 폭력성만이 서려 있다.
B “왕이시여 이것이 법입니까? 도박입니까?
이 판결, 동의할 수 없습니다!”
환호가 끊기고, 모든 시선이 B에게로 향한다.
왕 “무엇이라!”
B “왕께서는 법이 아닌 감정을 잣대로 삼으셨습니다.”
왕 “저 여인의 선택이 모든 것을 증명하지 않았느냐!
저 여인은 제 살점을 떼어내는 심정으로 아이를 살리려 했다.”
B “아이를 살리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친모라는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법정이 술렁인다.
왕 “그렇다면 아이 목숨을 두고 제 몫부터 챙긴, 네가 참된 어미의 모습이라는 말이냐.”
B “저 여인은 울었고,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왕께서는 그 눈물에 속으신 겁니다.”
왕 “울음은 천륜의 본능이다.”
B “울음은 연기일 수 있습니다. 왕께서는 지금 진실을 보신 것이 아니라,
숭고한 모성이라는 환상을 보신 것입니다.”
장내의 공기가 급격히 싸늘해진다.
B (잠시 숨을 고른 후)“저는 본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본능이라는 불확실한 요소가 법의 판단 근거가 되어도 좋은지 묻고 싶을 뿐입니다.
이곳은 본능을 확인하는 자리입니까, 아니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정입니까!?”
왕 “어미는 본능으로 아이를 지키는 법이다.”
B “그 믿음이 바로 문제입니다.
왕께서는 증거가 아닌, 어미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가설을 판결의 근거로 삼으셨습니다.
모성은 사회가 부여한 역할일 수 있으며! 실체 없는 믿음이 법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왕께선 오늘 생명을 살린 것이 아니라, 모성이라는 잣대로 저를 죄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솔로몬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지혜의 왕이라 칭송받던 그조차, 법의 근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 당돌한 여인의 논리 앞에서는 즉각적인 답을 내놓지 못한다.
왕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실체가 없어?…
너는 지금 과인이 공의(公義)가 아닌 편견으로 칼을 휘둘렀다 말하는 것이냐.”
B “판결의 결과가 정의롭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정의로울 수는 없습니다.”
A (아이를 꼭 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왕이시여… 저 여자는 미쳤습니다.
왕의 지혜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줄곧 고개를 떨구고 있던 A가 천천히 고개 들어 B를 본다. 그녀의 눈은 눈물로 짓물러 있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난다.
A “증거… 정의…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군요.
당신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논쟁이고 이론입니까? 모성이 사회가 만든 역할이라고요?
내 배를 찢고 나온 아이가 칼날 앞에 놓였는데… 곧 피 토하며 죽게 생겼는데….
갈기갈기 찢기는 이 감각이, 당신이 말하는 연기입니까?”
B “그 고통이 당신이 친모라는 객관적 사실을 증명하진 못합니다.”
A (B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사실? 그런 건 당신 같은 사람들이나 따지는 거겠죠.
나의 사실은 이 몸이 기억하고 있어요. 짓물러진 이 가슴이.
젖을 물리고 아이를 품으며 내 뼈마디가 다 녹아버린 그 시간이…
그거 연극 아니에요.
도망칠 구멍 하나 없는, 가장 잔인한 형벌 같은 사랑이라고요!”
A의 가슴이 격렬하게 들썩인다. 법정 안의 사람들은 A의 절규에 압도되어 숨을 죽인다.
법정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B는 A의 떨리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시 망설이다가 A의 손등을 감싸 쥔다.
B (왕을 똑바로 바라보며)“방금 들으셨습니까? 저건 숭고한 희생이 아닙니다.
당신의 칼 앞에서 터진, 절망의 비명입니다. 왕이시여, 당신은 진실을 찾은 게 아닙니다.
죽음을 들이대고, 공포를 앞세워, 어미라는 대답을 강요한 것입니다.”
B의 손이 A의 젖은 손등을 단단히 움켜쥔다. 차갑게만 보였던 B의 손끝 역시 미세하게 떨린다. A는 그 서늘한 떨림 속에서, 이 여인 또한 자신처럼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이 무대에서, 두 여인은 처음으로 같은 체온을 나눈다.
A (B의 떨림이 손을 타고 전해진다. 왕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왜 우리 둘 다, 아이 아버지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는지.
우리는 버려진 것이고, 당신은 그런 우리에게 보호 대신 시험을 내렸습니다.”
B (A의 손을 더 세게 쥐며 말을 잇는다)“맞습니다. 우리를 이 비참한 가난 속에 방치해 놓고는,
이제 와 누가 더 성녀 같은 엄마인지 판결의 유희를 즐기고 계시니 말입니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걷잡을 수 없는 소요는 왕의 위엄을 사정없이 흔든다.
왕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과인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칼을 들었을 뿐이다.
이 판결로 인해 아이는 어미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
A (단호히)“아니요, 당신은 칼로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우리를 진짜와 가짜, 어미와 도둑으로 나누어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었어요.
저 여인이 아이를 나누자고 했던 것은 악해서가 아니라,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정말 끝에 나온 말이었어요.”
B (한 걸음 내디디며)“왕께서 우리에게 누가 어미인지 물으셨듯, 이제 우리가 묻겠습니다.
이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는 명령이 지혜라면,
그 지혜가 군림하는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입니까?
오늘 당신은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법이 스스로 무너지는 장면을 남기셨습니다.”
A (젖은 눈을 닦으며)“아이를 살린 건 당신이 아니에요. 그 순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우리가 살린 거예요.
당신은 그저 구경만 하면서 위엄이나 챙긴 것뿐이라고요!”
객석에선 탄식과 반박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숨죽여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입술을 깨문다. 법정은 갈라진 숨들로 가득 차다.
B (A와 나란히 서서)“우리는 당신의 판결을 거부합니다.
아이는 우리가 함께 키울 것입니다.
한 명은 젖을 물리고, 한 명은 세상을 가르치며,
당신의 칼날보다 강한 연대로 우리의 아이를 지키겠습니다!”
두 여인은 거대한 법정 문을 밀어젖히고 나간다.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 위로 더 이상 죄인의 그림자는 없다. A의 품에 안긴 아이는 작은 숨을 고르며 잠들어 있다. 그 미약한 체온이 두 여인의 등을 조용히 떠민다. 객석에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만 단상 위 솔로몬은 철저히 혼자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매끈하고도 결백한 칼날. 칼은 아무것도 베지 않았으나, 그의 말은 많은 것을 갈라놓았다. 오늘따라 그 칼날은 세상 어떤 흉기보다도 차갑고 오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