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역사와 암흑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최대 규모의 사원이자 성지이다. 그 거대함에 압도당하기는 했으나 우리의 주된 목적지는 아니었다. 세계문화 유산이 그들에게 있다면 세계기록 유산도 그들에게 있다. 우리는 또다시 학살의 현장인 ‘뚜얼슬랭 대학살 박물관’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인 젊은 친구 A의 음반 작업을 도운 적이 있다. A는 답례로 캄보디아에 함께 가자고 했다. 영어도 잘하고 역사와 인권에도 관심이 많고 야무지고 계획적인 그녀의 제안을 뿌리칠 이유가 없다. 나는 졸래졸래 따라만 다니면 됐다. 여행에 앞서 안젤리나 졸리 감독의 <First They Killed My Father>를 함께 보았다.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안전띠를 단단히 매라는 A의 선전포고였다.
A는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살려 음악을 만들겠다고 했다. 기타를 가져갔다. 나는 플루트를 가져가야 하나 망설였다. 휴대하기는 간편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분실도 염려된다. 그래도 질세라 딸이 쓰던 취미용 악기를 챙겼다.
도착해서 처음 향한 곳은 수도 프놈펜에서 가까운 ‘청아익 킬링필드 학살센터’였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켜고 입구로 들어서자 17층 높이의 위령탑이 보였다. 빽빽이 들어찬 유골들이 설치 예술가의 전시처럼 가지런히 놓여있다. 중간중간 아이들의 작은 두개골도 보인다. 오디오에선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져 나오는데 해골의 뻥 뚫린 눈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다. 구덩이에선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흙이 쏠리면 아직도 유골들이 쏟아져 나온다. 불과 50년도 안 된 지구상의 일이다. 아기들을 내려쳐서 죽인 나무라 하여 붙여진 ‘칠드런 트리’ 에는 추모 리본이 많이 달려있다. 팻말을 따라 돌아가면 작은 산책로가 보이고 오디오에선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진혼곡이 울려 퍼진다. ‘자비로운 예수여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A는 다음 일정을 ‘씨엠립’으로 잡았다. 앙코르와트와 톤레삽 호수를 관광하며 엉켜있는 머리와 가슴을 풀었다. 이틀간의 문화유산과 현지인의 삶을 둘러본 후 우리는 또다시 학살의 현장인 ‘뚜얼슬랭 대학살 박물관’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크메르 루주(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가 세력을 확장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도 크게 한몫했다. 베트콩을 소탕하기 위해 미국은 캄보디아에 폭탄을 투하하여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내었고 친미 우익세력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켰다. 우익세력은 부정부패 비리로 국민의 불신을 샀다. 미국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했다. 이에 항거하여 시아누크 왕은 크메르와 함께 재집권에 성공한다. 더 큰 비극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채.
크메르의 두목인 폴 포트가 사실상 실권을 잡게 되면서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 사유재산을 불허하고 도시를 붕괴시키고 노동력을 갈취하고 국가의 배급만으로 살게 했다. 사람들이 이에 반항하자 폴 포트는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이라며 죽이기 시작하는데 자본주의에 빠질만한 사람까지 그 영역을 확대했다. 교사 의사 약사 법조인 예술가 종교인 심지어 안경을 쓴 사람, 손이 하얀 사람, 시계를 볼 줄 아는 사람. 지식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모두 처형의 대상이 되었다. 4년도 안 되는 기간에 200만 명에 이르는 자국민 1/4이 그에 의해 학살되었다.
고등학교에서 교도소로 탈바꿈된 ‘뚜얼슬랭 박물관’에는 수감된 사람들의 사진과 유골, 고문 기구 및 자료들이 상당수 보관되어 있다. 2000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 들어갔다가 12명만이 살아남았다. 우리는 둘러보다가 빈방을 발견했다. 그날은 방문객이 많지 않았다. 고요한 가운데 플루트를 꺼내 들었다. A도 기타를 꺼냈다. 그들의 영혼을 달래며 편안한 곳에서 평안히 쉬기를 소원했다. 그 소리는 교도소 담장 안을 꽉 채웠다. 누군가 찾아왔다. 호주 NGO에서 일하는 촬영기자 존이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허락했다.
폴 포트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이 혁명에 열심히 참여한 것은 캄보디아 국민을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지금도요! 나를 보세요. 내가 사납고 잔악하고 잔혹한 사람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은 양심적으로 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악마 같은 놈! 욕부터 튀어나왔지만 잠깐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악의 평범성> 개념을 이끌어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사람은 부당한 권위에 동조되어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라고 했다.
크메르 루주(급진적 좌익단체) 역시 자기의 죄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폴 포트의 명령이라는 허울과 명분을 뒤집어쓴 채 피의 향연만을 즐겼을 것이다.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