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생경(Jātaka)』에는 거북이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는 원숭이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다른 종(種)이라 해도 생명을 귀히 여기고 서로를 돕는 지극한 마음이 있으면, 그 인연은 죽음의 문턱도 넘어서는 법이다. 비록 모습은 달라도 '자유'라는 하나의 원력으로 뭉친다면 그보다 강한 힘은 없다.
이런 인연의 힘은 107년 전 오늘 밤에도 흐르고 있었다. 1919년 2월 28일, 3.1 운동의 전야였다. 서울 재동(齋洞) 11번지, 손병희 선생의 자택 마당에는 어둠을 뚫고 모여든 이들의 긴박한 발자국 소리가 가득했다. 불교계를 대표해 그 자리에 섰던 한용운, 백용성 스님을 비롯하여 천도교와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서로 다른 신(神)을 믿었으나, 그 밤 그들이 함께 품은 것은 '독립'이라는 하나의 부처요, 하나의 하나님이었다.
순야옹은 그 재동의 밤, 너와 내가 섞여 우리가 되었던 뜨거운 결속을 사유하며 북한산 진관사(津寬寺)로 향한다. 대웅전을 지나 오른쪽 산비탈을 오르면 칠성각이 고요히 서 있다. 이곳은 2009년 5월, 해체 복원 공사를 하던 중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유물이 나온 현장이다. 불단 안쪽 깊숙한 벽체에서 누런 종이 뭉치가 발견된 것이다. 90년 만에 빛을 본 그 보따리 안에는 일장기 위에 덧칠해 그린 태극기와 상하이에서도 구하기 힘든 독립신문 호수들이 들어 있었다.
계곡 물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칠성각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배낭에서 스테인리스 보온통과 표일배를 꺼낸다. 뜨거운 물을 붓자 갈색 찻잎이 소용돌이치며 보이숙차의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투명한 유리 찻잔에 옮겨 담은 차의 빛깔이 칠성각의 해묵은 기와를 닮아 깊고 묵직하다. 찻물이 거름망을 통과하듯, 90년이라는 긴 세월이 백초월 스님의 지극한 정성을 걸러내어 우리 앞에 이 태극기를 가져다 놓았으니, 이 어찌 예사로운 인연이라 하겠는가.
문득 전래동화 속 '콩쥐'가 떠오른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야 하고 산더미 같은 벼를 찧어야 했던 절망의 순간, 그녀를 도운 것은 작은 두꺼비와 참새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보탠 그 작은 생명들이 결국 콩쥐의 눈물을 닦아주었듯, 백초월 스님이 기와 밑에 숨긴 태극기는 90년 동안 북한산의 거센 바람을 견디며 우리 민족의 기도를 대신해주었을 것이다.
따스한 보이차 한 모금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갈색 찻물 속에는 억눌린 자들의 슬픔도 있지만, 끝내 꽃을 피워내는 인연의 희망도 들어 있다. 칠성각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산바람에 낮게 울린다. 저 작은 울림이 산을 넘어 세상을 깨우듯, 이름 없는 이들의 지극한 마음이 모여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음을 순야옹은 고요히 읊조린다.
기와 밑에 숨겨둔 것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을
붉은 마음이었네.
보이차 진하게 우러나듯
너와 내가 섞여 우리가 되었을 때
어둠 가득하던 재동의 밤에도
이미 봄은 와 있었음을.
[연재 안내]
'순야(純爺)의 갈색 사유'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차 향기와 함께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길 위에서 만난 역사와 지혜의 문장이 당신의 주말을 포근하게 감싸 안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말,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차 한 잔 나누며 행복하고 평온한 시간 보내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