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들 무릎은 좀 괜찮은가? 저번엔 왕비가 신비로운 하얀 코끼리 태몽을 꾸고 왕과 기쁘게 대화하는 데까지 했지? 오늘은 드디어 열 달을 꽉 채운 왕비가 친정으로 길을 떠나는 이야기를 해줌세."
마야 왕비가 태몽을 꾼 지도 어느덧 열 달이 다 되어갔어. 왕비의 배는 남산만큼 불러왔고, 가비라 성 사람들은 모두 성자가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 당시 인도 왕실에는 아주 독특한 관습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여인이 첫아이를 낳을 때는 반드시 친정에 가서 해산하는 것이었어. 왕비도 그 관례에 따라 친정인 '데바다하(구리성)'로 향하게 되었지.
정반왕은 만삭의 왕비가 먼 길을 가는 것이 못내 걱정스러웠어. 가마 앞에서 왕비의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지. "부인, 부디 몸 조심하시구려. 아기와 함께 건강하게 돌아오길 매일같이 기도하겠소." 왕비는 왕의 손을 지그시 맞잡으며 미소로 답했어. 왕은 왕비를 배웅하며 수많은 호위무사와 시종, 그리고 현명한 대신들을 거느리게 했지. 행렬의 규모가 어마어마했어. 번쩍이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코끼리와 말들이 왕비의 가마 앞뒤를 든든하게 호위했지. 룸비니 동산으로 향하는 길목은 그야말로 장엄한 환송식장과도 같았단다.
왕비의 아버지인 '선각 장자(안자나 왕)'는 딸이 온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어 성 밖까지 마중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대. 왕비의 어머니인 '야소다라' 부인도 맛난 음식을 준비하며 딸을 기다렸지. 사실 우리가 잘 아는 '룸비니'라는 이름도, 왕비의 친정어머니가 너무나 아름다워 그 이름을 따서 만든 정원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단다.
한참 길을 가던 왕비의 행렬은 카필라 성과 구리성 사이에 있는 '룸비니 동산'을 지나게 되었어. 때는 바야흐로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한 따스한 봄날이었지. 잠시 쉬어가려 가마에서 내린 왕비는, 동산 가득 피어난 무우수라는 나무의 꽃가지가 너무 예뻐 오른손을 살짝 뻗어 잡았어.
그런데 그 순간이었어! 나뭇가지를 잡은 왕비의 몸에 번개라도 친 듯 찌릿한 기운이 감돌더니, 아랫배에서 묵직하고도 강렬한 산기가 밀려오는 게 아니겠어? 왕비는 "아, 드디어 아기가 오려나 보다!" 하며 무우수 나뭇가지를 생명줄처럼 꽉 잡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섰지.
왕비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본 호위 신하들과 대신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며 서둘러 해산을 준비했어. "왕비 전하께서 산기를 느끼셨다! 어서 가리개를 치고 보살펴라!" 하는 다급한 외침이 고요한 동산에 울려 퍼졌지. 그 순간, 룸비니 동산의 모든 나무와 꽃들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고, 하늘에선 신비로운 무지갯빛 기운이 내려와 왕비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단다.
자, 만삭의 왕비가 꽃가지를 잡은 채 산기를 느끼는 이 경이로운 순간...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드디어 우리 곁으로 오시려는 역사적인 찰나가 시작된 것이라네. 아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을까? 그건 차가 좀 더 우러나면 다음번에 이어서 해줌세.
이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참고 경전: 『불소행찬(佛所行讚)』 및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불소행찬』은 부처님의 생애를 찬탄하는 서사시로, 정반왕의 배웅 장면이 매우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불본행집경』은 룸비니 동산의 유래와 왕비의 친정 가계도를 소상히 밝히고 있어 고대 인도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① 정반왕(슈도다나)의 지위: 석가족은 당시 인도 북부의 전형적인 '공화정(Gana-Sangha)'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왕위가 엄격하게 세습되는 전제 군주제라기보다, 부족의 유력한 가문(크샤트리아 계급)들 중에서 대표자인 '라자(Raja)'를 선출하거나 합의하는 구조였지요. 정반왕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덕망 높고 세력이 강해 석가족의 연맹을 이끄는 수장 역할을 수행했던 '선출된 지도자'에 가깝습니다.
② 선각 장자(안자나)의 지위: 마야 왕비의 친정인 콜리야족 역시 석가족과 유사한 공화정 체제였습니다. '장자(長者, Setthi)'라는 호칭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적 자부심과 사회적 신망을 갖춘 유력한 지도자 계층을 의미합니다. 선각 장자 또한 콜리야족 내에서 선출되거나 추대된 최고의 의사 결정권자로서, 데바다하(구리성)를 다스리며 석가족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던 인물입니다.
③ 부족 연맹과 혼인 동맹: 당시 소국들이 난립하던 북인도 상황에서 석가족과 콜리야족은 생존을 위해 서로의 수장 가문끼리 전략적인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정반왕과 마야 왕비의 결합은 단순히 개인의 만남을 넘어, 두 부족 연맹체의 결속을 다지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④무우수(無憂樹)와 성스러운 탄생: '근심이 없는 나무'를 뜻하며, 부처님이 탄생하신 성스러운 나무입니다. 왕비가 이 나무의 가지를 잡은 것은 장차 탄생할 아이가 세상의 모든 근심을 해결할 구원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5362888/220960153309
<순야옹의 목 오후 차담>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1시, 차 한 잔 나누며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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