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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May 21. 2024

납을 금으로 만들기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

  현자의 돌멩이라는 마법의 돌을 사용하여 납으로 금을 만드는 작업을 일컬어 연금술이라 칭하는데, 물질을 변환시킬 수 있다는 마법의 돌을 개발하는 고독한 연구 수행자를 연금술사 내지는 알키미스트 (Alchemist) 라고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어떤 연금술사도 현자의 돌멩이를 완성시킨 바가 없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자의 돌을 평생토록 탐구해온 다빈치 엉아(?)부터 철학자이자 수학자로서 명성이 자자한 르네 데카르트를 비롯하여 불후의 천재 과학자로서 최후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까지 내로라할 술사들 있었지만 죄다 실패와 좌절의 쓴맛을 겪었다. 

  혹여 지금에라도 마법의 돌 완성하기만 한다면 얼마간의 포상금과 명예가 걸린 노벨상 따위는 그냥 개나 줘버릴 수 있을 만큼의 떼돈은 물론이고, 막강한 명예와 권력을 즉시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음은 말할 나위가 다.


  사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화학과 물리학의 엄청난 도약으로 하여금 굳이 현자의 돌멩이를 사용하지 않고도 납으로 금을 만드는 작업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이 세간에 발표되기에 이른다. 원리를 알고 나면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고, 21세기인 지금의 시대에는 입자가속기를 비롯한 양자 충돌장치와 어지간한 엔지니어링 기초지식만 보유하고 있다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평범 무쌍한 과학기술이 되었다.

금(Gold)은 원소 기호로 Au, 원자 번호는 79이다.


  쉬운 예로, 원자핵의 양성자나 중성자를 건드려 다른 원소로 바꾸는 작업으로, 원자번호 82의 납에서 양성자 3개를 제거하면 원자번호 79인 금으로 변환이 된다. 그러나 핵력으로 단단히 결합된 원자에서 양성자 3개를 떼어 내려면 예측 가능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비용을 따져보면 천연광물인 금을 채굴하여 수은으로 분리하는 비용에 비하여 수만 배나 높은 이유에서 상업적 가치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국은 책임질 수 없는 헤픈 말이 쉬울 따름이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핵력의 결합으로 구성된 원자핵을 건드려 가볍게 연구 목적용 금괴 몇 개를 만들어보는 시도가 가능하리라 상상은 되지만 에헤... 이것은 손쉽게 해 볼 수 있는 만만한 작업이 결코 아니다.


  천문학적인 실험 제조 비용에도 불구하고 물리화학적 방식으로 원소가 변환된 인조 금은 천연 금과 달리 원자 번호가 동일해도 질량수가 다른 동위원소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수소(H), 중수소(2H), 삼중수소(3H) 등과 같이 동일한 수의 양성자와 전자를 지녔지만 다른 수의 중성자를 품고 있는 사이비(유사) 금이기에 순도 99.99%의 순수한 금으로 만드는 물질 변환과정에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므로 과학기술적 차원에서는 엄연하고 분명하게 실현가능 커니와, 실제의 상업적으로는 수율 문제가 심각한 허튼짓에 해당하므로 하나마나한 짓이라는 것이 현재까지 정설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의 차원에서는 실제로 유사 금을 제조하여 항암치료나 실험용 의약품 내지는 초임계 물질의 상태 반응용 촉매 실험에 사용하고 있다는 학계의 보고서는 흔하다. 사이비 금은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 금과 같이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 그저 금의 동위원소 중 하나일 뿐이고, 억지로 끼워 맞춰진 원소와 여분의 중성자들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붕괴하면서 방사선을 배출하는 게 다반사라서 납으로 금을 만들기에는 아직 요원한 절망의 연금술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불가능성의 가능화 도전 사업이 있는데, 이른바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연구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중세의 연금술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이 사업은 앞서 언급한 납으로 금을 만드는 따위의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다. 이 사업은 각 분야의 기초지식을 융합 응용하여 지금껏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온 연구목표를 수행하여 성공가능성 0.01% (달리 말하자면 불가능성 99.99%)에 달하는 모험개발투자 연구 성격의 순수 공격지향성 연구개발 사업이다.

  혹여, 이 연구사업의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면, 실현가능성 및 재현가능성의 여부에 따라 상업적 레드오션으로 적자에 허위적대는 한 국가를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영약만큼이나 경제적으로 지대한 파괴력을 제공할 것임은 물론이다. 다만, 성공가능성의 확률이 다소 께름칙하다는 점이 크나큰 장벽이자 걸림돌이다.


  자본주의의 기반을 제시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이후 한 세기 동안 지구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예측은 그가 생존하던 19세기 당시에는 어느 누구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그의 혁신적 사상이었던 변증법적 유물론 현자의 돌처럼 잠시동안 세상을 바꾸는 마술을 부렸건만, 사이비 금처럼 실패한 미완의 실험으로 종말을 고하고야 말았다. 그 당시 자본가로부터 더 많은 잉여품의 생산을 강요당하며 온갖 착취와 핍박을 인내해야 했던 노동자계급 (플로레타리아)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었기에,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인류사적 실험그나마 가능케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소위 공산주의 사상을 제조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조리한 인간들이었다. 그 둘은 자본주의 몰락을 진심 열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엥겔스 자신은 자본주의 혜택 덕분에 (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부유하고 편안하게 잘 살았다. 명마를 길러 주말이면 말을 타고 사냥개를 앞세워 사냥을 즐겼고, 당대 최고급의 와인을 즐겼으며 애인을 두고 사교클럽에서 맨체스터의 엘리트 그룹들과 술잔을 기울였기에 한마디로 신사 계급의 성공적 구성원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했던 인물이었다.

  마르크스 역시 신흥계급의 부르주아지 내지는 부의 모든 것을 항상 비판하면서 엥겔스를 만나기 직전까지는 생계가 곤란하여 두 딸을 잃을 만큼 궁핍했건만, 그를 만난 이후부터는 정작 부유하게 살았다. 그나마 생존한 딸들을 귀족 학교에 보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내의 출신 배경이 귀족이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곤 했다.


  인간이기에 부조리할 수밖에 없었던 칼 마르크스의 저서 '법철학 비판' 기고문에는 불공평한 세상을 향한 조건부 삿대질 같기도 하고, 결핍이 제공하는 일말의 고함 같기도 한 자기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어야 한다."


  비록 유물론자의 토악질 같은 사변(思辨) 이건만 당신은 어떠한?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인가? 정신을 챙겨서 숙고해 볼 만한 현실적이자 몽환적인 모순의 화두가 아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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