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내가 도망을 다니는 이유
여태 도망 다니는 이유를 그대는 알지 못하리. 플랫폼 어디에도 숨을만한 곳은 없고, 오르막 낭하 출구는 저승길이 아니건만, 그럭저럭 버텨 왔느니... 여태 내가 도망을 다니는 이유를 정작 그대는 알지 못하리. 이승의 끝머리 22,000V까지 4.5m, 이 막잔을 모가지에 쑤셔 넣고, 죽어 염을 받아 이튿날 재가 된들 568번 마을버스는 다시금 안 올 리 없다. 야브로시, 고압선을 밟고 서있는 흰구름이 멈칫대는 경인선 백운역. 이즈음에 적란운이 어지러울 리 없는데, 저건 필시 역 건너 국도변 부평화장장 생산품 일터.....
기다려줄 이유가 전혀 없는 서울행 막차는 반시간 전쯤 끊겼고, 더럽게도 긴 인생 안 뒈지고 살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는 법. 오도 가도 아니할 기차는 미쳤다고 기다리냐며, 보라색 정육점 조명으로 유혹하는 건널목 선술집. 직좌 후 직진 우회전 금지!! 소주 한 곱부에 남의 살 두 점, 이보시게! 술 하고 원수질 일 없으니 고기나 좀 자시게... 연탄가스에 취한 신이 나를 용서할 자격이 없으니, 술에 취한 내가 신을 용서해야 하는가? 에헤... 허튼소리! 자네도 고기, 나도 고길세 설마 하니 생 고기가 익은 고기를 용서할 일이 있것는가? 그냥 불에 덴 거뿐일세... 또 한 곱부를 모가지에 털고 남의 살을 씹는다. 오늘 가지만 않으면 낼은 생애 여분의 첫날 이것제? 암은, 뭣이 어째도 산사람은 살아야 쓰제..! 이 잔이 막잔이면, 숨 가쁜 내 생애도 막다름이 분명하다.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지? 나를 사랑한다면 정작 말을 해달라고.....
예라이 모지리야! 이녁이 암만 모를 거 같으냐? 딴 디서 헛짓거리를 한들 몸뗑이는 임자가 아니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녁 영혼은 파먹는 놈이 거시기제... 배때지에 식칼이 들어와도 응급실이 살렸으니 이녁은 기왕에 고기여... 자글자글 타들어가는 고기는 이 잔이 막잔인지 알리가 없고 손님, 마감을 해야 하니 우선 계산을... 예라이! 모지리야 이녁이 폴시 모를 거 같더냐? 눅눅한 경인선 복복선은 사체처럼 침울한데, 도주하듯 내빼는 화물열차 꼬랑지는 왜 저리도 슬프냐? 비엔나 모텔은 우회전 60m, 첫차를 기다릴 이유도 없고, 숨을만한 곳을 보증하는 공간도 없다. 기억해보니 첫사랑은 느닷없이 죽었고, 두 번째는 도망을 갔다. 세 번째는 내가 도망을 쳤고, 그 이후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모른다. 사랑을 베는 칼이든 이별을 베는 칼이든 본질이 같기 때문이지. 이담에 우리 같이 살게 되면..? 어치케 해야 쓰까... 썩어가는 것은 어둠일 뿐 광명도 없다. 혹여, 저승이 있다면 염라대왕도 거기에 있을터, 그 개자식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승에 태어난 순간부터 내게 기소장을 발부 하였을까?
염라대왕: 하! 이거참... 쟤는 누군데, 아무짓도 안 하고 잠자코 있는 나를 사바에서 겁도없이 씹어대고 지랄이야! 이거봐, 조놈시키 데이터 좀 가져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