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빈 것은 빈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지의 관객이자 배우일 수 있다.

by 하이경

그대는 지나가는 행인 1 이거나, 2 아니면 3, 4, 5... 일 수 있겠지만, 이 극을 완성시키는 주역으로서 분분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이 극에는 조연이 결코 없다!


영화 '트루먼 쇼'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과 자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거대한 TV 쇼의 일부임을 알게 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가 사회라는(거대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엮인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타인이 바라고 기대하는 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은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겪고 있는 갈등과 대동소이하다. 상호 모순되는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화로운 자기표현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그리하여 그 틀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란 과연 존재하는지가 의심스럽다. 이 주제는 오늘날 현재를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가상현실 (Virtual Reality)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셜 미디어와 가상현실이 우리의 삶에 지난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편집되거나 데코레이팅 된 이미지로 타인의 기대와 부응에 맞추다 보면 실로 진정한 자아를 상실하기도 한다.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은 자신이 처한 완벽한 가짜 현실을 깨닫고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고 있자면 관객으로서 통쾌하건만, 우리도 역시 디지털 세계의 레이디 메이드(기성품)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편집되지 아니한 순수한 자아를 찾아보려는 시도는 과연 무의미할까?

힌두교 경전 베다의 부속서인 우파니샤드에서는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동일한 본질로 간주된다. 브라흐만은 존재와 비존재의 이원성을 초월하여 근본적 실제로 여겨지며 아트만(자아)과 연계되어 동일시되기에 우주 전체이자 궁극의 실체를 의미한다. 불멸의 존재로 알려진 아트만은 개인이 지닌의 참된 자아를 나타내기에 우리가 자신의 안에 내재된 본질을 성찰하여, 외부의 기대나 가상적 현실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루먼 쇼'는 현대 사회에서 가상의 현실과 디지털 이미지에 우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멋진 극이다.

무대의 조명이 페이드 아웃되고 막이 내려오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군지의 관객이거나 아니면 누군지를 위한 배우일 수 있다. 사변이건만, 거듭된 극속의 극이라는 미장아빔으로 버무려진 인생이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다만,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의 본질 그 자체를 추구할 따름이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을 경험해본 적이 있지 아니한 다음에야, 그대와 나의 본질 그 자체도 실제가 아닌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빈 것은 빈 것이 아니고, 찬 것은 찬 것이 아니다

- 반야심경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죽음과 죽임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