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뿐만 아니라, 또 놀라운 기술이다
전쟁을 파괴나 폭력으로만 본다면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인류의 지식, 조직력, 그리고 자원을 집약시킨 거대한 기술(Art)의 장이었다. 전쟁이 왜 단순한 싸움이 아닌 기술인지 몇 가지 측면에서 추론해 보자.
전쟁은 물리적인 힘보다 논리와 심리의 싸움인데, 손자(孫子)가 이르기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듯, 상대의 허점을 찌르고 지형과 날씨를 이용하는 것은 고도의 지적 설계다. 때와 장소에 병력을 배치하는 운영 능력. 적의 사기를 꺾고 아군의 결속을 다지는 통치 기술 즉, 전략은 전술에 앞선다. 인류의 혁신적인 발명품 중 상당수는 전쟁터에서 태어났고, 암호해독과 네트워크도 실은 전쟁에서 개발되었다. 현재는 일상이 된 GPS 기술도 원래는 정밀 타격과 목표물 탐지를 위해 개발되었고, 더 가볍고 단단한 갑옷을 만들려는 노력이 방탄복을 비롯한 현대의 재료공학으로 이어졌다.
"전투는 전술가가 결정하지만, 전쟁은 보급관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군대용어로는 병참이라 칭하며 수만 명의 인원에게 식량, 연료, 무기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체계는 현대 SCM(공급망 관리)과 경영 시스템의 뿌리가 되었다. 병사 개인에게 있어서 전쟁은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여 최적의 효율을 내는 '무술(Martial Arts)'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병사 개인의 강인함 만을 목적함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을 통해 공포를 제어하고 기술을 실행하는 숙련도를 의미한다. 즉, 전쟁이란, 한마디로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구라고 봄이 타당하다. 전쟁은 잔혹한 현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종합 예술이자 기술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모순 덩어리 용광로가 만들어낸 발명품들은 놀랍게도 지금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지만, 전쟁터에서의 필요는 그 속도가 가히 광속이었다. 군대를 먹여 살려야 했던 고민이 현대의 간편식을 만들었고, 나폴레옹이 장기전을 위해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방법을 공모하면서 탄생한 통조림은 병에 넣는 방식이었으나, 이후 금속 캔으로 발전했다. 전쟁이 만들어낸 유명한 발명품과 시스템 몇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1. 전자레인지: 2차 대전 당시 레이더망을 구축하던 중, 마그네트론(전자기파 발생 장치) 근처에 있던 초콜릿이 녹는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진 어찌 보면, 완벽히 실패한(?) 불후의 가전제품이다.
2. 환타(Fanta):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미국의 코카콜라 원액을 수입하지 못하게 되자, 우유 찌꺼기(유청)와 사과 과육 등을 섞어 만든 것이 시작이다. 문제는, 여기에 군인들의 피로감 상쇄용으로 히로뽕을 첨가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문자 그대로 환상(Fanta)을 경험할 수 있는 마약(?) 음료인 샘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환타'에는 이런 성분이 있을 리 만무하다.
3. 전장과 패션: 우리가 입는 옷 중 상당수는 군복에서 유래한다. 명품으로 회자되는 버버리사의 트렌치코트는 이름 그대로 참호에서 비바람을 견디기 위해 군인들이 입던 옷이고, 티셔츠는 미 해군이 겉옷 안에 입던 면 소재의 속옷이었다. 전쟁 후 참전 용사들이 평상복으로 입으면서 대중화되었다. 방한용으로 입는 카디건은 전쟁 당시 지휘관이던 카디건 백작이 부상병들이 옷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니트 앞 트임을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4. 의료와 위생 : 전쟁터의 끔찍한 부상은 역설적으로 의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항생제 (페니실린)의 발견은 전쟁 전이었지만, 2차 대전 중 부상병의 감염을 막기 위해 대량 생산 체계가 갖춰지며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1차 대전 당시 포탄 파편으로 얼굴을 다친 병사들의 외모를 복구해 주려는 시도가 현대 성형외과의 기초가 되었으며, 생리대는 원래 전쟁터에서 지혈용으로 쓰던 흡수력이 좋은 패드를 간호사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상업화가 되었다고 발명사에 서술하고 있다.
5. 인터넷 (ARPANET):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통신망의 대부분이 파괴되어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분산 네트워크 시스템을 고민하다 탄생했다. 미 국방부가 미사일의 정밀 타격과 군대 위치 파악을 위해 쏘아 올린 군사 위성 시스템이 지금은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둔갑되어 있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그 과정에서 탄생한 기술들이 역설적으로 인류의 삶을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묘한 딜레마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전쟁이 사기라는 대명제에 대하여, 기술의 진보라는 저항불가의 사실을 제공하는 모멘텀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정밀하게 설계된 고도의 사기수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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