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우습게도,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라는 시퍼런 거짓말로 악을 쓰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언급에 당황하여, 수긍 자세를 취하게 된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기가 죽어 그런 것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현상의 의문점에 당장 ‘검증된 사실’ 그 이상의 권위는 없기 때문이고, 과학적 신뢰성이라는 빙자(憑藉)의 충격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저런 기만으로 악을 쓰거나 억지를 부린다면, 이건 깡패나 조폭이 하는 짓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목하, 과학기술이 만능으로 군림하는 시대에 이르면, 경계가 분명하던 학문의 영역 구분마저 사라질 수 있다. 이들이 괴물이나 아니면 깡패로 전락하여 횡포를 부리는 사나운 꼬락서니를 보고 싶지 않다면, 비록 문돌이(공돌이의 반대말) 일망정 최소한의 과학기술 지식이나 기초공학적 지식을 지녀야 함이 타당하다. (뭔지 모르면 무턱대고 악을 쓰는 전문가 바보에게 된 통으로 당한다)
한편 안심해도 될 사실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은 멀쩡한 정신을 지닌 휴머니스트라는 점에 있다. 무식한 공돌이라는 비하 발언에도 그냥 웃어넘기며, 그들의 자리에서 고독하게 과업을 수행해오고 있는 엔지니어나 사이언티스트들이 만약 강패나 조폭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엽기적 사건으로 비화될 것이고 그러한 사실이 혹여 있을 수 있다면 거기에는 원인제공이 있었을 것으로 감히 판단한다. (비록 픽션이지만, 현실에서도 '렉터' 박사와 유사한 정신병자나 또라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주변에서 쉬운 설명이 가능한 평범한 기술적 사안에 관하여, 애써 전문용어를 구구절절 남발하며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어설픈 공학지식을 동원하여 복잡한 소리를 지껄여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엔지니어가 아니라고 보면 확실하다. 그 실예로, 경제학자이자 저명한 사회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그의 저서 ‘엔트로피’에서 엉터리 공학적 개념은 물론 과학사를 제멋대로 오도하여 이 분야의 지식인들로부터 숫한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
과학기술은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지 골치 아픈 엉터리 유사 과학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확실한 알고리즘과 일련의 검증 단계를 마친 결과를 얻기까지가 다소 복잡하고 피곤할 뿐이지 명료하고 간단한 것, 그것이 과학이자 곧 기술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로마시를 설계하였다고 알려진 비투 우루스 '다빈치' 작품 보통의 문돌이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표적 유사과학으로는 지적설계설(Intelligent design theory)이 있다. 이 엄청난 설계론은 인류의 역사에서 불변의 진리로 통하던 '창조설'을 과학에 삽입시킬 요량으로 묘하게 본질을 변형시킨 유사과학 중의 한 섹터이다. 지적설계설의 적용은 모든 사물의 현상에 대하여 얼추 가져다 붙이면 무조건 적용이 가능한 희한한 감언이설 이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논쟁에 있어서 종교적인 맥락으로만 다루어지므로, 그 주제는 태초의 생명체에 관한 이슈로 축약되거나 제한된다.
지적설계설을 요약하면, 생명을 지닌 주체 즉, 생명체가 지닌 고유한 제 기능은 신적인 존재가 설계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생명을 지닌 생물은 어떤 초인간적인 지적 존재가 있었기에, 그가 창조한 순수의 피조물이며 찰스 다윈의 추론대로 자연의 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실제의 예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 지적인 기계를 설계하였고, 기계 내부의 장치를 비롯한 기계요소가 제 스스로 지적 동작이 가능한 행위를 한다는 건, 단지 인간의 설계의도 때문에 그런 기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뇌 기능에 해당하는 연산장치도 그 기능의 필요에 따라 중앙처리장치(CPU)를 인간이 만들어 탑재를 하였기 때문에 연산 기능은 물론이고 추리능력까지 지니게 되었다. 또한 메모리를 위시한 다른 부품들이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를 근거로 지적 기능을 탑재한 기계는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스스로 진화되어 생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인간이라는 지적인 설계자를 통하여 인위적으로 창조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여기까지는 전적으로 논리적 오류가 없다. 이를테면 인간의 설계가 없었다면 지적인 기계도 없다는 주장이니 그럴싸한 이유 있는 주장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에서 민감한 문제점은, 지적설계론 추종자들의 엉뚱한 확대해석이다. 궤변을 도입하고자 하는 비유는, 마치 우리가 컴퓨터의 각 기능을 만들어 사용하듯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각 기능 역시 절대의 지적인 존재가 있어서 그의 완벽하고 빈틈없는 설계를 통하여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이 주장이 당위성을 지니려면, 그 증거로 반드시 설계도가 필요하다. 절대자가 천사에게 설계까지 하청을 줬으니 설계도는 의미가 없다거나, 시공 당시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 분실하고 없다는 핑계로 뭉기적이면, 이는 필시 신의 주사위 놀음과 다를 바 없다. 이보시게, 아인슈타인 박사! 설계자도 가끔은 주사위 놀음을 한다네!)
반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앞서 언급한 지적 설계자의 직, 간접적인 개입이나 설계 의도가 없어도, 원시 생명체가 지닌 순기능의 점진적 발달상황을 귀납적 현상을 근거로 쉽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를 수용한다면 지적 설계자가 따로 존재할 필연성 따위가 전혀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당위성이 결여된 지적설계론은 과학으로 볼 수 없는 유사과학이다.
한편으로, 지적설계론 추종자들은 지적설계란 모종의 교리가 아니며, 과학 이론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창조론과 대동소이하여 전혀 다를 바 없다. 한때 창조설을 지지하는 일부의 정신 나간 학자들이 공교육의 과학 과목에 창조론을 포함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
와중에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라는 일반 대중들로부터 반박의 벽이 원체 두텁기에, 은근슬쩍 과학의 틀속에 자신들의 이론을 끼워 넣을 요량으로 심각하게 고민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지적설계론의 실체가 되는 샘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필이면 '신'이라는 보편적 표현을 거부하고 '지적 설계자'라는 용어를 도입한 이유는, 특정 교리에 국한된 가설의 강요는 오래전 미국의 연방 법원에서 위헌으로 판정이 나면서, 그동안의 시빗거리였던 창조설이 공교육의 현장에서 퇴출당한 선례가 있었다.
따라서, 지구 상에 '절대자'의 개념을 지닌 어떠한 종교든 입맛에 맞게 끼워 맞출 수 있도록 '지적 설계자'라는 희한한 용어를 채용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공교육의 지구과학 시간에 노아의 홍수에 관하여 그때의 강수량이 얼마여서 이러쿵저러쿵 언급을 하거나, 천문학 과목에서 타락천사 루시퍼를 미카엘이 잡아 죽였는데 악마로 부활하여 샛별이 되었다거나, 여호수아가 잘 돌아가던 태양을 잡아 돌려세웠다거나 하는 엉뚱한 소리는 조용히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있다.
그러면 도대체 설계자는 누가 설계를 하였는가?라는 의문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케케묵은 난제다. 이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평생을 고민하던 문제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문제를 준용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표지의 깡패 일러스트는 Seung Eun Kim (@kse332) Instagram 을 참조하였음.
종교의 선택과 신앙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다. 물론, 그것을 선택하지 아니할 자유도 당연히 보장되어 있으므로, 이를 강제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대단히 위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