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야무야가 무슨 뜻이냐고...?
수학적 개념의 '무한'은 그 명료한 정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신비로운 영역이다. 무한에 자연수나 정수 또는 유리수나 무리수를 곱해도 무한이고, 무한에 이들 수를 더하거나 뺀들 역시 무한이다. 적어도 무한이라는 영역에서 만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칙연산의 무결성이 처참히 붕괴되고 만다.
다만, 신의 영역으로 불리워지는 '없다'라는 의미 0에(수학적으로 0의 개념은 의미가 다르지만) 무한의 개념을 도입할 수는 없는데, 무한에 0을 곱하거나 나누는 행위는 애시당초 오류이다. 그 이유로 무한은 모종의 수(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한의 영역에서 만큼은 경우가 다르게 0/0 또는 ∞/∞ 꼴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진리의 로피탈 정리로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같이 무한에서는 부분이 전체가 같고, 또 전체와 부분이 같다. 따라서 무한의 개념은 반드시 직관을 허용해야만 하는 이상한 세계가 전개된다. 이러한 직관을 확대하여 현대의 이론물리학인 양자역학에서 파생된 양자생물학을 도입하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탄소원자의 집합군에 약력이 가해지면, 불특정한 소립자는 특이점에서 양자도약을 일으켜 탄소분자 고리에 엮이고, 유기물인 DNA가 형성되어 생명의 단초가 생성한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의 기초 개념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하이젠베르크의 운동방정식도 마치 무한의 개념처럼 놀라운 직관으로 쓰여졌고, 적어도 이 방정식은 변증법적 논리로 구축된 빈틈없는 이론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등장하는 유(有)는 무(無)에서 나와 무(無)와 같다는 우주론이 있는데, 여기에서 있음(有)과 없음(無)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면 동등가(질량)을 지닌다. 즉, 탄생(생성)과 죽음(소멸)을 동질로 보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본시 있다는 것은, 없는 것으로부터 나와서, 없는 것과 같다는 알쏭달쏭한 언급 이지만 아무리 곰 씹어 봐도 기가 막힌 철학이다. 춘추전국 시대인 2,500여 년 전 노자가 타임머신을 사용하여 현세를 왔다 갔을 리가 없고, 그 당시에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양자역학을 그 시대에 이해하고 있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가 주장하던 그의 우주관은 전적으로 옳았다.
20세기말, 그러니까 21세기의 문턱에서 각 분야의 과학자 100인에게, 종교나 오컬트의 차원을 떠나 신의 존재를 믿는가? 라는 내용의 설문지를 배포하여 통계 조사를 해보니, 결과는 놀랍게도 37% 이상이 '그렇다'라고 답변을 했다는 믿을만한 보고서가 있다. 여기까지는 그럴수도 있겠다고 수긍이 되지만, 괴상한 점은 그 다음의 질문에서 '아니다'로 답변을 하여 신의 존재를 부정한 사람들 중에서 종교를 지니고 있다고 답한 과학자가 52%였다는 점은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도무지 무슨 답이 이리 괴이할까...?
신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 하면서도 반 이상의 과학자들은 한편으로 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종교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답변 중 여자가 아담의 갈빗뼈로 형성 되었다는 사실을 거부하거나, 불교를 믿는 과학자는 제외 되어야 한다. 석가세존은 아예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고, 오직 해탈만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법을 하였으니...
최고의 지성은 물론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지식인으로 자부하는 그들이 왜 이토록 서로 상충되는 부조리한 답변을 한 것일까? 혹여, 그들도 노자의 직관처럼 유(有)는 무(無)에서 나와 무(無)와 같다는 우주관을 지녔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사소한 의문이나마 이런 비논리적 현상에 대한 궁금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게 취미라서, 인지과학에 일가견을 지니고 있는 지인과 술좌석에서 안주 삼아 그의 견해를 구했더니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의사를 개진 하였기에 그 내용을 여기에 개제 한다.
"대상의 존재 여부에 관한 믿음이란, 이원론(二元論)으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즉, '그렇다' 혹은 '아니다'의 경계가 뚜렸한 원색이 아니라, 무채색인 회색처럼 '그렇다'와 '아니다'가 구분없이 공존하는 천이구역(遷移區域)이라는 겁니다. 심리학자들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의 판단이란 지식수준과 무관하게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의외로 부조리한 면이 거의 태반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는 샘입니다. 믿을 수 없거나,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경우 어느 것을 선택하건 이익이 같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코 긍정에 한 표를 던지고 맙니다. 그러니 괴이하고 부조리한 답변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있음과 없음이 동질 이거나, 삶과 죽음이 동전의 앞, 뒷면이라면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실존주의자는 부조리의 늪에서 허위적이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결국 망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