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랑지 천국(19금)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리다.
내일이면 어떨지 몰라도, 오늘의 나는 당당한 흡연자이다. 시대적 상황이 개(?)같이 변하여, 때때로 흡연자를 바라보는 껄끄러운 시선과 뜻 없이 쏘아대는 매서운 눈총을 받을 경우라면, 심한 자괴감에 의문의 일패를 당했다는 쓸쓸한 느낌도 없지 않음이 사실이다. 딱히 그럴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끔은 호주머니 속의 궐련곽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무려 수십 년을 니코틴 중독자로 지내왔으면, 지금쯤은 이놈 으로부터 멀어질 때도 되었다. 이제는 매캐한 연기의 도움이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거니와, 케케묵은 버릇을 청산할 나이도 되었다. 하지만, 몇십 년 지기 친구에게 느닷없이 결별을 선언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애증의 혼재이자 선택 부조리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더듬어 생각해보면, 짧지 아니한 세월 동안 나는 줄곧 담배를 피워오고 있다.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같은 거짓말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고, 더구나 인간의 수명을 재촉한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도 모르는바 아니다. 그게 진정 사실이라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기에 버무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소각해버린 샘이 된다.
지금쯤 불쌍한 폐부는 보나 마나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게 뻔하지만, 이로 하여금 병원에 홀라당! 드러눕는 처지가 된다면 정신을 챙겨 흡연질을 그만둘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적어도 오늘은 건강하다는 또 다른 증거이므로 능력이 될 때까지 피우고, 공연히 이 문제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결별을 해도 그만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지긋지긋하다.
청년시절의 나는 다다이즘에 심취했던 기억이 있다. 그 여파 일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서서히 단절의 벽을 쌓았으며, 고의적으로 외로움을 즐긴듯 싶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일종의 성장통으로 판단이 된다. 끽연은 그즈음 하여 시작이 되었지만, 누구로부터 흡연에 관한 방법이나 정석을 사사(?) 받았거나, 흔히 말하는 모종의 반항적 차원에서 오는 행동성향은 결코 아니었다. 이를테면 나름대로 끽연 오락(다섯 가지의 즐거움)을 만들어 흡연의 이유에 관한 당위성을 유포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지금 생각해보면 보통의 억지가 아니었지만, 기왕 얘기가 나온 바에야 끽연 오락론(五樂論)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뭔가를 지니고 있다는 소유의식과 만지작 거리는 확인의 낙이 있다.
둘째, 궐련을 물었을 경우, 입술의 감촉으로 전해지는 접촉의 즐거움이 있다. 소아성 즐거움이다.
셋째, 메케하게 목을 간질이며 폐부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이해불가의 원초적인 낙이 있다.
넷째, 연기를 뿜어내면, 온통 주위를 감싸는 포근함을 제공하는 그야말로 은은한 낙이 있다.
다섯째, 운해처럼 찬찬히 분해되는 시각적 효과는 물론이고, 좀체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에 몰입할 수 있는 정중동(靜中動) 차원인 사색(思索)의 낙이 있다.
기가 막힌 그럴싸한 해석처럼 보일 수 있으나, 지금에 와서 이것은 내가 끽연을 하는 분명한 이유도 아니며, 당시 담배를 피워야 하는 행위에 관한 순전히 엉터리 미화임은 틀림이 없다.
이 시점에서 내 흡연 성향은, 지독한 중독성으로부터 이미 거부감을 상실하여, 냉수 마시듯 거의 습관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옳다. 재떨이에 처참하게 구겨진 채 살해당한 꽁초를 가만히 지켜보자면, 덧없는 인생의 적나라한 설계수명을 배울 수 있다.
20세기 말엽(1998년도 전후의 상황)이 지금 하고자 하는 얘기의 무대이니, 듣기에 한 100여 년 전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얼마 전에 불과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남짓한 과거의 이야기 인지라, 이 글을 접한 독자께서 한물간 꼰데의 헛소리로 취급을 할까 봐, 제목을 야하게(?) 포장하였다.
여기에 이야기하는 꼬랑지란, 비행기의 뒷좌석 즉, 흡연석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이유에서, 19금 딱지를 붙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판단은 전적으로 옳았다)
지금은 모든 항공사에서 자국 내 항로는 물론이고, 장거리 외항을 뛰는 비행기까지 모든 좌석이 금연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천만의 말씀이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당시에 거의 모든 항공사에서는 끽연자를 위한 흡연석을 비행기 꼬랑지에 당당히 지정해서 운영하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골초들은 거기 그 항공기 꼬랑지가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다. 미국이나 유럽노선 같은 경우라면, 최소 12~14시간 이상을 기내에 체류해야 하므로, 합법적 흡연 석인 꼬랑지에서의 흡연량은 내 기억으로 거의 궐련 두 갑에 가까웠다.
실제로 항공기 내부의 공조시설은 공학적으로 완벽하게, 필요 공기량을 충분히 순환시켜 주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라 당시만 해도 비흡연석 승객들이 흡연자에게 눈치를 주거나 흡연자에 대한 모종의 불만은 함부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지금 듣자면, 흡연자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이며, 또한 믿을 수 없는 얘기이지만, 원래 항공기체 내부의 의장설계는 시간당 필요한 환기량의 확보가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한다. 이것은 이 분야의 엔지니어를 제외한 일반 승객이나 승무원들은 거의 모르는 사실일 수 있다.
항공기의 1분당 1m^3 환기량은(이는 공학 단위로 CMM: Cubic Meter per Miniature를 의미한다.) 거의 돔형 야구장의 1분당 환기 횟수와 맞먹는 수준으로, 실시(상세)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흡연 행위 자체가 건방지고 껄끄러울 뿐 (사실 비흡연자 측에서 보면 지독한 악취도 수반되지만) 공중위생적 차원에서는, 날달걀 하나를 프라이팬에 튀길 경우에 발생하는 미세먼지 현상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항공기내 꼬랑지 흡연석은 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흡연자를 위한 변명 만세!)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판단하다 보면, 한탄할 노릇이지만 무지한 자들의 거짓말은 무지한 거짓말을 재생산하여, 또 다른 거짓말로 포장되고 결국 거짓말로 결론을 짓게 마련이다. 이 분야의 엔지니어가 아무리 악을 써도, 국제항공규약에 따라 이 카르텔에 속한 모든 항공사는 죄다 이 법안에 찬성하여, 결국은 기내 흡연 금지법안을 다수결로 의결한다.
참 거지 같지만, 악법도 법은 법이라서 나는 법을 존중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대중의 권력 앞에서 신뢰성을 보증하는 기술적 증빙이란, 그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부서질 따름이다. 이는 결코 지나친 편견이 아니며, 어찌 보면 이것이 다수결이라는 고질적 횡포의 단면을 지닌 우리들의 역사이자, 기술자의 비애라고 판단한다.
인천공항이 개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공중보건에 관한 시행규칙(공공장소 금연법)이 실시되었을 무렵,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책임자와 설계직무상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책임자에게 질의 하기를, 우리나라는 법률에 의거 공항 내 모든 구역을 금연으로 지정했는데, 당신들은 아직도 저렇게 공항 내 흡연을 허용하느냐고 물었더니 공항 책임자는 나에게 놀라운 답변을 해왔다.
‘그것은 비흡연자들의 정당한 권리라고 보지만, 적어도 우리는 흡연자들의 권리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담배 연기가 타인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 검증된 사실이라면, 해를 끼치지 않도록 환기량을 충분히 늘리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일 뿐 흡연자들의 끽연을 강제로 삭탈할 권리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에 따른 충분하고 넉넉한 환기량을 재설정하여, 승객 대기실의 환기시설을 다시 설계하는 중이다.’
나는 이 언급에 적잖이 감동하였다. 소수의 의견을 포함한 진정한 엔지니어이자 휴머니스트로서의 간결한 해법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흡연은 질병으로 판단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흡연이란 엄연히 자연인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기호 수단이며 자유 의지다.
오래전, 미국에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금주법이 있었듯 가혹한 금연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마치 걸인이나 불가촉천민 취급을 당하듯 도시의 뒷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가엾은 흡연자들은, 과연 합법적으로 공인된 향정신성 마약류에 찌들어있는 의지박약 중독자이며, 기실 정당한 흡연 권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폐암을 유발하는 미필적고의 행위를 자행하는 잠재적 범죄자인가?
이는 법리상 매우 그럴듯 하지만 분명히 헌법소원을 제기할 소지가 충분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골초로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치사할 따름이다.
코로나오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하늘길이 차단되고 여행자의 발이 묶인 이 시대에, 멀쩡한 승객 운송용 항공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꼼수까지 부려가며, 적자로 연명을 하거나 급기야 도산을 하는 항공사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기에도 비상구는 있다.
방법을 제시하자면, 비흡연자 탑승 불가용 노선 즉, 흡연자 전용 항공노선을 개발하여 상품으로 출시하게 된다면, 나 역시 일정을 조율하여 당연히 그 항공기만을 선택할 것이고, 적자로 허덕이던 항공사는 흑자로 전환이 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Welcome to smoking section!)
언젠가는 이 메케한 담배 내음마저 내 주변에서 사라질 것을 염려하며, 나는 지금 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성가시게 연기를 토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