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기가 내 몸에서 떨어지던 날,
내 아버지도 내 곁에서 떨어져 갔다.
고춧가루보다 더 지독한 고독을 안주로
서너병의 소주를 쥐알려도 끈덕지게 나를
붙들고 있던 감기는, 내 아버지처럼
외마디의 일갈도, 부탁도, 원망도 없이
소르륵 내 곁을 떠나갔다.
남아있은 아들은 또 느닷없이 감기에
시달릴것이고, 살아생전 세상을 향하여 토하던
그 의미없는 악다구니를, 이제는 들을 수조차
없다는 기묘한 서러움에 시달릴것이다.
나는 죽어 땅에 묻히는걸 원치 않는다.
내 아버지처럼,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휑한 바람으로 떠남을 원치 아니한다.
혹여 내가 당신의 곁에서 죽어가면,
숨이 끊어지지 아니한 내 몸뚱아리를
전라도 바닷가 어디 섬구석으로 데려가
파도가 어지러운 바위 위에 눕혀다오.
아직은 썩지 아니한 내 살이라도 날 짐승에게
원없이 찢기고 뜯어먹히게 하리라.
죽음이 세상의 끝도 아니기에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은들 무에 의미가 있으랴?
견딜 수 있을만큼 모질게 나를 괴롭히며,
내 몸에 기생하던 감기가 내 곁을 떠나듯...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들이
소르륵 내 곁을 떠나고야 말것이다.
도무지 구체화할 수 없었던 거품같던 존재,
존재 함으로 하여금 존재 하였던 존재,
보이지 아니한 모진 인연의 끈으로,
무참히 나를 결박하고 있었던 존재.
이제 사바에 옳가진 인연을 홀홀 벗고,
망각이 유유한 저 황천 어느 어귀에서
윤회의 나룻터를 서성이고 있을 존재.
나머지와 몫의 흔적이 선명한 이승에서
한 줌의 재로, 아니면 한 그루의 나무로
그것도 아니라면 한 자락 바람으로 회기한
그리하여 저 머나먼 우주로 훌쩍 떠난
지금은 존재하지 아니하는 존재.
나의 아버지마냥 나 역시 언제가는
총총 그리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