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빛창가 Jul 30. 2022

프린세스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였다

영화 스펜서에 드러난 왕족의 삶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거창 한 것 같은 이 질문에 나는 과감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때'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스펜서]는 너무나 많이 사랑받았지만 외로웠던 다이애나 왕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장면에 죽은 꿩 한 마리가 길가에 놓여 있다.

마치 왕실의 권위에 짓눌린 다이애나의 모습 같다.

그 위로 군인들의 차량이 지나간다.

이미 죽은 상태지만 바퀴에 밟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차들이 스쳐 지나간다.


놀랍게도 군인들이 실어 나르는 것은 무기나 군사 장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왕실의 크리스마스 만찬을 위한 식재료 들이었다.

영국의 왕실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샌드링엄 별장에서 휴일을 보내는데, 로열패밀리들의 식사를 위한 재료이기 때문에 안전등을 이유로 군대가 동원되는 것 같다.


프린세스 다이애나는 검은색 포르셰를 직접 몰고 샌드링엄 별장으로 향하지만  이내 길을 잃고 헤맨다. 그녀는 근처 식당에 들어가 길을 묻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깜짝 놀란다.

(여담이지만 식당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우아한 여성이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계단을 올라갈 때의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다이애나가 길을 헤매느라 만찬에 늦는 동안 별장에서는 여왕을 비롯한 왕족들의 몸무게를 재는 장면이 나온다.

도대체 왜 몸무게를 재는 걸까?

놀랍게도 연휴기간에 충분히 맛있게 먹었다면 몸무게가 늘 것이기 때문에 연휴 전과 후의 몸무게를 잰다고 한다. 물론 재미로 그렇게 하는 것이고 전통이라고 한다. 솔직히 영화 전체를 통틀어 이 장면이 제일 황당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전통이지만 며느리인 다이애나 입장에서는 끔찍하게 싫을 것 같다. 재미로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누가 재미있는 것인지....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휴가기간(3일)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사건의 나열보다는 다이애나의 심리 상태에 대해 묘사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에선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규칙과 전통에 얽매여 숨을 쉬지 못한다. 심지어 모든 행사에 입을 옷까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영국 왕실은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비합리적인 모습이 많아 보인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섭식장애가 생긴 그녀를 왕실 사람들은 문제아 취급한다. (우린 괜찮은데 너는 왜 이렇게 유별나? 이런 느낌...)


실제로 다이애나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임신했을 때 군중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어 차 안에서 많이 울었지만 찰스 왕세자는 제대로 된 위로는커녕 왕세자비로서의 역할만을 강조했다고 한다.

스무 살의 앳된 그녀가 왕세자비가 되어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것만으로도 힘든데 임신한 몸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싶다. 알려진 바와 같이 남편은 결혼 전부터 카밀라와의 관계가 이어져 있었고 애초에 사랑 없는 결혼생활이라 그녀의 외로움은 더욱더 컸을 것이다.


그녀가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은 바로 아이들과의 시간이다. 참 다정하고 좋은 엄마였던 것 같다. 아이들과 있을 때만이 시댁 식구들의 간섭이나 외부의 이목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왕실 눈밖에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여러 상황과 함께 그 속에서의 그녀의 선택 등이 조금씩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왕실에서는 다이애나가 유순하순종적인지 알고 왕세자비로 선택했지만 의외로 자아가 강해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혼서약에서 '순종'이란 단어를 거부했으며(이후 며느리들도 이 단어를 거부하고 넣지 않음) 왕가의 출산은 외부에서 하지 않는 것이 원칙(궁전에서 출산)이었는데 그동안의 관습과 달리 다이애나는 세인트마리 병원을 선택함으로써 윌리암 왕자는 병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군주가 되었다. 이후로 윌리암 왕자와 해리 왕자 부부도 이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또한 찰스 황태자는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을 낳고 싶어 했는데 둘째도 아들을 낳자 내심 서운해했다고 한다. 해리 왕자를 낳고 나서 부부 관계가 더 삐걱거린 것 같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샌드링엄 별장은 그녀가 어릴 적 자라온 곳 근처에 있었다. 그녀가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별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넓은 밭에 허수아비가 서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허수아비에 걸쳐져 있는 옷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의 옷이었다.(그녀의 아버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의 옷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만찬이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옷을 벗겨서 챙겨 온다. 아마 이때부터 그녀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마 이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인 것 같다.



아래 장면은 별장 근처에 있는 그녀가 어릴 때 살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스펜서이듯 그녀는 스펜서 성을 가졌던 시절의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씩 찾게 된다. 안갯속에 갇혀있는 그녀의 모습이 왕실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에 갇힌 현재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섭식장애와 자해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의 입 밖으로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은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화려한 삶을 살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는데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그녀는 심지어 임신한 몸으로 계단에서 몸을 던지기 했는데 찰스 왕세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녀를 위로하기는커녕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사냥을 나갔다고 한다. 아무리 사랑하지 않는 다고 하지만 가족인데 참 매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왕실에서 자기편이 하나도 없이 사랑받지 못한 그녀가 코너에 몰렸기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몸부림이 섭식장애나 자해로 표출되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왕실의 전통에 따라 꿩 사냥을 하는 장면이 나온데 이 꿩들은 오로지 왕실의 사냥을 목적으로 길러지며 어린 윌리엄 왕자도 사냥에 동참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어린 아들이 사냥을 위해 꿩을 죽이는 것을 못마땅해 해던 다이애나는 사냥터에 나타나 사냥을 방해한다. 바로 허수아비에 입혀져 있던 아버지의 옷을 입고 말이다. 이 장면에서 그녀가 정신 이상이 아닌가 하고 놀랐지만 어린 아들을 생각하면 나라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그동안 그녀는 왕실의 힘없는 허수아비였지만 아버지가 입었던 옷을 자신의 몸에 걸침으로 스펜서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까마귀들(왕실, 관습)을 적극적으로 쫓아내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힘이 있는 허수아비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그녀는 용감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다. 그리고는 왕가에서 먹던 화려한 음식이 아닌 가장 대중적인 음식을 아이들에게 사준다. 이 장면을 보면 아마 그녀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소소한 행복과 사랑이 아닐까 싶다.


비록 몇 년 뒤 비극적인 죽음을 맞긴 했지만 이혼 후 그녀의 삶은 자유로웠다. 세상을 떠나기 몇 년 동안이라도 스펜서 그녀 자신으로 살아간 것이다. 아마 그 시간 동안만큼은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전통과 관습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결국 인간을 위한 전통과 관습이 그 아래 있는 인간을 괴롭히고 옥죄인다면 과감히 축소하고 버려야 하는 게 아닐까? 2022년 올해도 크리스마스에 체중을 재고 있을 영국의 왕가 사람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지금은 없어지지 않았을까?) 윌리암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즈음이면 다이애나가 살던 시대보다는 현명하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관습을 가진 영국 왕실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필즈상 허준이 교수와 히로나카 헤이스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