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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섭 May 03. 2024

자연(自然)과 인위(人爲)

공존의 필요성 

인류 전쟁의 역사를 보면  특이한 무기가 등장함으로써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지요.

하지만  거의 예외 없이 그것에 대한 대응책은  곧바로 등장하게 됩니다.


가령 기병의 등장은  보병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대적 상대였지만  기다란 창을  개발하여  기병이 가진  속도와 공간적 우위에  대응책을 찾게 되었습니다.


수비의 입장에서도 난공불락이었던  단단한 성곽은 화약을 이용한 대포로  그 가치가 허물어지는  것처럼

어느 하나의 개발이나  특화된 능력은  초기엔 무소불위의 능력을 갖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체계에 대응하는  수단이 대두되면서  다른 형태의 판도가 재구성됩니다.


인체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합니다.


최근 한 세기 동안에  인류는  세균 같은 병원균에  족집게 같은  처방을 구성하여  세균의 입장에서는  거의 몰살의 위기감을  초래하였습니다.


페니실린이 처음 등장한  1930년대 인류는 감염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으나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아  내성균이  발현하였고, 또다시  거기에 대응할 항생제를 개발하였으나  돌연변이로 내성을 지닌  새로운 세균의 등장하는 등  지금까지의 항생제 역사는 창과 방패처럼  끝없는  반복의 도돌이표입니다.


강하게 때릴수록 강하게 반발하는, 즉 내성이 강할 대로 강해진 괴물을 만드는 잘못을  한 셈이 되었습니다.


인간관계와 같으며   공존의 묘(妙)를 도모해야지   너 죽고 나 살자 하면  상대방 역시 같은 관점으로 접근해 오게 됩니다.


전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기는 방법은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 하잖아요?


근래 전쟁을 치르는 나라들을 보더라도 전쟁은 무기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경제, 문화, 인구 등 그 나라의 국력에 비례하여 유리함을 점합니다.


인체도 전반적인 컨디션이 양호하고  면역기능이  원활하면  병균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마치 강한 국력을 지닌 나라를 감히 깔보는 이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나 병원이 없는 자연계의 동물들을 보면   인간처럼  깨끗한 물이나 사시사철 보온되는 주거, 하루도 굶지 않는  식습관 같은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고   썩은 고기, 며칠씩 굶거나 사냥하면 포식하는 불규칙한 식습관  포식자에 대한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면서도  큰 질병 없이  주어진 수명을  누리는 점을 보면 

인간이 향유하는 의료라는 관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날카로운 독설이 상대방에  쏟을 때  일시적으로 쾌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비례하는  독설을 맞는다는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에는 간단한  항생제를 쓰거나 아니면 기다리면 저절로 제어가 될 병균들이  강력한 항생제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진짜 치명적인 병균으로  변모시킨  잘못이 우리에게 있는 셈이지요.


세상은 퍼즐과 같습니다.

낱낱은 별 의미가 없지만  그 퍼즐이 빠지면 작품을 구성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그 작품을 구성한 요소로 존재했다면  반드시 그럴 까닭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물주가 아닌 이상 임의로 인간의 관점에서  넣고 빼는 것이  힘든 일일뿐만 아니라 비록 그것을 완성했다 하더라도  전체에 미칠 파장의 위험성은  예측이 불가합니다.


근래  큰 자연재해들이 인간이 산업과 문명의 발달을 위해서 도모된 수많은 인위(人爲)들이 자연(自然)의 범위를 넘어섬으로써 발생함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인체 역시  수백만 년간 지녀온 자연이라는 흐름을  지금 바로 현재의 인간들이  필요에 따라 인위적인 조작으로 변형을 추구하지만   대부분 자연의 법칙과는 위배되며  그것으로 인한 폐해는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 기술뿐만 아니라 인체를 대하는  시각의 변화까지 포함하는데

혈압약을 하나 먹기 시작한  중년은  점차 그 복용하는 약의 종류가 늘어나 노년에는  한 주먹씩 먹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면  자연인에 등장하는 분들은  반대로  여러 약을 복용하고 육체적, 정신적 피폐에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산에 살다 보니  약을 끊고서도 2~3년 지나면  거의 모든 병이 완쾌되어   건재함을 자랑하는 것을  흔하게 접하고 있습니다.


인위를 끊고 자연으로 귀의하면  인체도 드디어 제 길을 찾게 되는 이치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산에 가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인드를 마치 산에 사는 것처럼 해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약이란 치료가 됨으로써  점점 줄여가야 합니다. 

그런데 점점 늘여 간다는 것은 그 약 자체가 다른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말이지요.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여 질환을 줄이는 고유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환자는 점점 줄어야 하고  병원은  팽창하면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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