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처방의 구성 원리
한의과 대학의 교과 과정 중에 본초학(本草學)이라고 한약재 하나하나의 성분, 효능, 부작용 등등을 배우고 방제학(方劑學)을 통해 한약재의 구성 법과 그 탕제의 효능을 배웁니다.
보통 본과 2~3년 사이에 배우게 되며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배운 내용을 써 볼 기회를 갖습니다.
방약합편 같은 처방 모음집을 참고하면 처방과 효능에 대한 설명이 있으므로 호기심 반 치료 욕심 반으로 증상에 맞는 처방을 선택하고 제기동 한약상가에 가서 한약을 구매하고 직접 첩약으로 조제를 하였었습니다.
물론 35년 전의 일이어서 지금과는 실정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여름에 더위를 타고 무기력하다는 분에게 청서익기탕(淸暑益氣湯)이라는 처방을 가감 없이 첩약을 지어 드렸더니 무척 약효에 만족하셨습니다.
청서익기탕은 비교적 처방 내용이 단순하고 용량도 작은 편이어서 볼품이 없어 보였는데 한약을 다 복용하시고 다시 한약을 부탁하시길래 경험이 부족했던 그때 본초학과 방제학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본방에다 나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한약재를 이것저것 첨가하며 더 좋은 효과를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한약을 드시고 어지럽고 멍해지는 부작용을 호소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그 이유를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난감 그 자체였습니다.
다행히도 한약을 중지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원상 회복을 하였으며 저도 그 처방을 달여서 복용해 보았더니 과연 같은 증세가 나타났었지요.
처방에는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고 전체적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약리학에서 말하는 성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임상 초기에는 여러 번 헤매고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아마 모든 영역에서 비슷한 궤를 지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의학에는 대부분의 병증을 치료하거나 또는 경감시켜 주는데 유효한 여러 처방들이 존재합니다.
그 처방 하나하나는 음식의 레시피와 같아서 정해진 한약재와 용량들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고
일부 처방에는 변증(辨證)을 통하여 약재를 가감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임의로 처방에 가감을 하거나 변형을 유발하게 되면 위에 언급한 것처럼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듯이 수차례 검정되고 확인된 안전하고 유효성이 입증된 한약재 구성품이 하나의 처방으로 등재되고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게 됩니다.
처방 내용에는 주 작용을 하는 한약재와 보좌하는 다른 약재들로 구성되어 기를 보할 것인지, 혈을 보할 것인지, 혈액 순환을 도울 것인지, 화를 식혀 줄 것인지 등등의 유관 효능을 지니는 한약재로 조화로운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수 천년 한의학 역사에 수많은 처방이 존재하니 필요한 것은 꼭 필요한 그것을 뽑아내는 혜안이라 하겠습니다.
도서관에 수많은 서적이 존재하여 거의 모든 지식을 망라하여 담고 있는데 색인을 통하여 정확하게 접근하지 못하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음식 장인들의 레시피를 보면 나름의 철학과 음식 재료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십분 이해하고 사람이 필요로 하고 궁합에 잘 맞게 버무리는 섬세한 손놀림이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계절에 따른 신체의 변화에 음식 종류나 레시피가 달라지듯이 인체의 병증이나 질환에 따른 개개인이 처한 조건이나 현황을 파악하여 적절한 처방을 선별하는 것이 관건인 셈입니다.
체질이나 직업 환경에 따라 같은 병증이라도 처방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니 인체의 생리 병리 뿐 만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같은 현대 과학적 요소도 많이 동원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양방과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는데 가령 위장병으로 소화 불량 증세가 있으면 양방은 소화제를 처방한다면
한방에서는 속열이 많아서 생긴 것인지 아닌지 식욕의 여하 등을 따져 경우에 따라 전혀 상반되는 처방을
하게 됩니다.
일반인들이 오해하고 못 미더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양방은 무슨 병에 무슨 처방 즉 당뇨에는 어떤 약이 정해져 있고 혈압이나 고지혈증약에 대표 성분의 약재가 정해져 있는데 한의학은 맺고 끊음이 깨끗하지 못함을 탓하는데 이런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불만이 양약은 계속 새로운 약이 개발되는데 한의학은 과거 처방에 매몰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체의 면역 기능은 천부적이며 인간이 만든 어떠한 항생제보다 탁월한 면역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면역 세포가 만들 수 있는 항체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고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드는 거의 모든 약물들은 인체가 지닌 무한한 면역력에 비하면 보잘 것 없으며 종종 특별한 신약을 개발하였다고 대서특필 되지만 대개는 용두 사미에 그칠 따름이고 여전히 같은 종류의 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의학은 인체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만들어 고유의 면역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저절로 질병과 질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위와 자연`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시적인 효과를 위한 사람의 개입은 자연의 큰 순환을 방해하여 결과적으로 인간의 건강에 큰 해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한의학은 과거 처방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인간의 건강한 생존 조건에 유익한 처방을 발굴하여 언제든지 필요시 도움을 받게 구비된 선견지명이라 하겠습니다.
병을 만드는 것도 나라면 병을 치료하는 주체도 나이기 때문에 치료의 주인은 항상 `나`라는 생각이 중요하고 올바른 길을 계도하는 것이 의료인의 역할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