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꼬?

잘못된 의학 편견이 부르는 위험성

by 정희섭


10여 년 전 이웃 동네를 지나고 있는데 어떤 운전자가 차창을 열어 길을 물어와 긴가민가 하면서도 짐짓 자신 있는 어투로 저쪽으로 가시라 하고 돌아서 생각하니 잘못된 길을 알려드린 것이 맘속에 찜찜하게 남아있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올바른 정보를 얻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길이 사실인 양 제시되면 바른길을 찾을 가능성은 없어져 버립니다.


이런 관계는 일상 여러 곳에서 존재합니다.

지금은 여러 검색 도구나 A.I 등의 도움으로 일정 부분 갈증이 해결되기는 하지만 심도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강에 있어서는 특히 더 강조됩니다.


상품이나 물건은 대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손실이지만, 내 몸의 건강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상 경험이 35년 이상 쌓이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몸의 생리, 병리에 대해 인지하는 폭이 넓어져 오고 있으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찾아보고 고민도 해 보며 지난 세월을 회고하기도 합니다.


여러 직업 중에 아픈 몸을 이끌고 치료를 구하려 오는 대상이 아픈 환자들이시고 그분들을 웃고 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병의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브런치에 기고한 내용처럼 깨달은 바를 임상에 적용하고 환자 스스로가 억눌린 상황을 개선해 주기만 해도 거의 대부분 호전되거나 완치되는 기쁨을 느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수많은 간염 환자를 치료해 왔지만 감사하게도 누구도 한방치료로 인한 부작용이나 간질환이 악화되는 경우는 없었고 대부분 호전되거나 항체가 생기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무조건 한약이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그런 부분을 충족 시켜 줌으로써 각자가 내재한 면역기능을 최대로 발휘하여 병을 축출하는 기전입니다.

물론 잘못 처방하면 부담을 더하므로 정밀한 질병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흔히 체질, 유전, 스트레스 운운하거나 무슨 증후군이라 진단을 받는다면 모른다는 말을 포장해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원인은 모르지만 증상은 뚜렷하게 눈에 보이니 거기에 대한 진단과 처치법은 매우 발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모르니 근본적인 해결책이 등장하기 어렵고 마치 배고파 우는 아이 왜 우는지를 모르니

젖을 줄 생각을 못 하고 입을 막거나 회초리로 혼내 당장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것이 대증요법입니다.


피부병, 알레르기 질환, 관절질환, 성인병 등 여러 질환들이 이런 이유로 팔자에 없는 폭발적 증가를 보입니다.


옛날 의사분들은 다행히도(?) 의료 기기가 덜 발달한 덕분에 질병에 대한 고민과 환자의 고충을 충분히 들어 줄 시간이 있었고 환자의 내재적인 요구사항을 인식할 수 있었으나 현대에는 수많은 진단 기기로 인해 수치화, 형식화하여 환자의 의견은 쉽게 무시됩니다.


즉 내가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검사상 정상 범위라면 환자가 아닌 셈이 되고 반대로 멀쩡한데 의사 앞에서 긴장하면 평소 혈압에서 10~30mmHg 올라가는 것이 정상임에도 갑자기 고혈압 환자로 진단받아 이유 없는 혈압약을 복용하는 신세가 됩니다.


흔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제도 B형 간염 보균자가 관절 문제로 치료를 받으러 오신 차에 간염치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병원에서 한약이 간에 좋지 않다 했다며 그것에 대한 언급을 굳게 내비쳤습니다.


이미 양방치료의 대표적 부작용인 상기(얼굴이 붓고 안색이 어두워짐), 몸통 및 목덜미가 부어 살이 붙게 되며 관절은 약해지는 등 전문가가 보면 걱정되는 요소들이 발현되는 상태였습니다.


세상에 올바른 치료를 할 길이 많이 존재하는데 이미 잘못된 길이 유일한 줄 알고 굳게 믿고 있는 환자를 보면 안타까운 맘을 어쩔 수 없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도로의 이정표와 같습니다.

바른길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과감히 인정을 하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가 제시하는 길이 위험성이 있음을 알고서도 환자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겁박을 해서라도 막는 것은 마치 선남선녀가 서로 사랑하여 짝을 맺으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결국은 한의사든 의사든 더 열심히 공부하고 환자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내 가족의 고통을 없앤다는 심정으로 질병의 본체 탐구에 정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를 완전히 치료를 못해줄지언정 더 악화시키는 일은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환자들도 무조건 내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요즘처럼 열린 정보 마당에서 찾아보고 왜?라는 탐구심으로

비교해 보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혈당이 높다면 왜 높아야 할 이유가 생긴 걸까?라는, 내가 주인이 되는 관점에서 쳐다봐야 합니다.

잘못하면 `무조건 고혈당은 나쁘니 당뇨약을 써서 내립시다`라는 의사의 소견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데

우는 아이 입을 막는 치료로 울지는 않게 할 수는 있으나 아이의 건강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내가 나를 바로 알지 못하면 남의 간섭을 당연한 듯 문제의식이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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