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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제기(有求諸己)

신체 병증의 의미

by 정희섭

유구제기(有求諸己)는 논어 위령공 편에 `군자는 잘못된 점을 나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타인 탓을 한다`는 문구에서 차용한 말입니다.


즉 `나에게서 구함을 둔다`라고 의미입니다.

즉 병을 만드는 것이 나라면 병을 치료하는 주체도 나라는 것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하산길임에도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며 장거리 라이딩 국토종주를 하다 보면 남쪽을 향해야 정상인데 때론 북쪽이나 동쪽 등으로 향하는 길을 가야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도중에 절벽이 있거나 큰 강이 있어 직진이 불가능한 경우 우회로를 찾아야만 하는데 그 결과물이 뜬금없는(?) 행로를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또는 지도 등을 통해 전체 경로가 파악된 경우라면 혼돈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갈림길에서 헤매기 십상이고 자칫 엉뚱한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인체도 오랜 기간 동안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여러 경우의 수를 만나게 되고 그럴 경우를 대비한 우회로를 개척해 놓았습니다.


즉 적정 체온이 36.5℃가 정상인데 그보다 체온이 오른 경우, 혈압이 130/90mmHg이 이상적이나 때론 그 이상으로 훌쩍 벗어나는 경우, 여러 형태의 혈액검사상 이상 수치를 보이는 경우 등이 그것에 해당합니다.


마치 평지를 순탄하게 가는 자동차는 일정한 rpm을 유지해도 정속을 지킬 수 있지만 오르막이나 전방에 장애물이 있다면 급격하게 엑셀을 밟거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당연히 평소의 rpm을 크게 벗어납니다.


감염이 되면 체온을 2~3℃ 올려 병원균을 사멸 시키고 추위 더위를 많이 타게 되면 혈액을 농축시켜 비열을 안정화해야 하므로 고지혈증이나 고혈당 등을 유발해야 합니다.

상에서 홍수나 자연재해로 인해 평소 다니던 길이 폐쇄가 되면 우회로를 가게 되고 부하가 증가됩니다.

대처법은 안타깝지만 길이 복구될 때까지는 평소의 평온함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체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통증이나 발열 등 여러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근본적인 치료법은 그 원인의 제거에 있지만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국소적 진통이나 해열, 고지혈증약, 당뇨약 등으로 증상을 숨기는 방법을 동원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라는 말처럼 대부분의 일상적인 통증이나 발열 등은 그 자체가 치료를 촉진하는 자극입니다.

가령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프로스타글란딘(PG)의 분비는 새 조직을 형성하는 주요 물질입니다.


그 과정에 트롬빈도 같이 형성되어 혈전으로 감염 등이 퍼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통증과 발열 등이 신생 조직 형성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체를 모르고 국소적 현상으로 판단하면 통증을 유발하는 나쁜 병리 현상으로 오해하여 아스피린처럼 항염증, 항혈전제를 투여하여 내 몸이 하는 행위를 막아서기 시작합니다.


문제를 유발한 원인 제거가 아닌, 나름 합리적 우회로로 대처하는 인체의 반응을 국소적 관점에서 남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고 하여 무조건 막으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당장은 통증이나 발열 등 불편한 증상을 없애주므로 쉽게 매달리게 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는 부담은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태나 검사상 수치는 정상처럼 보이지만 점점 잇따른 다양한 증상들이 발현하고 투여하는 약의 종류와 양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별문제 없는데 건강검진에서 한두 가지 지표의 이상으로 갑자기 환자가 되어 약을 복용하면서 끝없는 계기가 됩니다.


지표의 이상이 나를 약을 먹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름 문제점에 대한 대응 행위이거나 요구 사항이란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인체의 생리, 병리를 잘 모르므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며 의료인은 이것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호랑이 입에 박힌 가시로 인한 통증을 없애는 진통제가 아닌 가시를 제거해 주는 바른 접근이 무엇보다 요구됩니다.


매우 이기적인 인체는 생존을 위한 특화 반응입니다.


요즘처럼 혹서기에는 체온이 상승하기 쉬우므로 본능적으로 냉면이나 콩국수처럼 시원한 음식으로 열을 식히려 하고 반대로 뜨거운 음식은 잘 선호하지 않는 것은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자연선택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2끼를 맛있는 갈비를 연이어 먹었다면 대부분 다음 끼는 다른 음식을 입이 찾습니다.

충분히 갈비를 섭취하여 갈비에 있는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였므로 그것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에 다른 메뉴를 찾게 됩니다.


한약도 음식처럼 입을 거쳐 복용하는데 인체는 입을 통해 나에게 필요한 성분인지를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움이 된다면 쓰거나 시거나 상관없이 복용을 허하지만 맞지 않거나 필요치 않는 처방이라면 입에서

거부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잘못된 처방으로 생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여 더 큰 문제를 예방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영양제나 양약은 코팅을 하거나 당분을 첨가하여 입의 검증 초소를 숨어 들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씹어 맛보게 하는 것이 아닌 물로 꿀꺽 삼키게 하여 내 몸이 대응할 최소한의 기회도 얻지 못하게 합니다.


의료 보험으로 병원의 문턱은 대폭 낮아졌지만 비례해서 환자가 폭증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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