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인체 대상관(對像觀))
출퇴근을 걸어서 다니다 보니 이어폰으로 가끔 유튜브에서 옛날이야기를 듣곤 한다.
무역 상단(商團)을 운영하는 주인이 두 아들에게 각자 목선을 주고 다른 포구에서 물건을
사 오게 하는 내용이었다.
욕심과 허세가 강한 큰아들은 산뜻한 새 배를 고르고 사공도 젊은이들을 고용하고 배 밑바닥에
무게 중심을 잡는 맷돌을 속력을 내는데 방해된다고 치우게 하고 출항을 하게 된다.
반면 둘째 아들은 낡은 배와 늙었지만 경험이 많은 사공을 인수받고 사공들의 조언에 따라 적절한 맷돌로
배가 알맞게 물에 잠기게 하여 안정성을 높였다.
현대의 큰 배들도 빈 배인 경우 부력이 너무 강하여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서 불안정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격벽에 `평형수`를 넣어 배의 안정을 도모한다.
이 이야기의 끝은 당연히 큰아들은 큰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침몰하여 낭패를 당하는 반면 둘째는 파도를 헤쳐 무사히 목적을 이뤘다는 내용으로 끝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배가 가벼우면 맷돌로 적절한 심도를 유지하고, 실은 짐이 많아 배가 무거우면 맷돌을 들어내어 균형을 이루게 한다.
너무 가벼우면 배가 바람이나 너울에 쉽게 좌우로 흔들리고 너무 무거우면 수면과 갑판이 가까워서 약간의 파도에도 바닷물이 배로 침범하게 되어 두 가지 모두 배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
안정된 배는 외부의 자극에 휘둘림이 적어 별 노력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못한 배는 사람이 일일이 물을 퍼내거나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균형을 잡는 등 난파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추위와 더위를 잘 타지 않으며 잔병 치레를 거의 하지 않는다.
배로 비유하면 뜨는 부력과 물에 잠기게 하는 무게가 균형을 맞춘 것과 같다.
그래서 파도나 바람이 배의 안전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므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
반면 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약간의 파도나 바람에도 선체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므로 적극적인 방어 행위를 해야 한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과민반응(알레르기), 추위나 더위를 잘 탐(만성 감기 증상), 빈번한 감정 변화, 비염, 관절 통증이나 저림 등의 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불안정한 선체에 바닷물이 튀어 오면 퍼내고 닦아내는 것처럼, 기관지로 한기가 침범하여 재채기나 기침, 콧물 같은 자구(自求) 행위를 하게 된다.
마치 가만히 있는데 사소한 것들이 자꾸 나를 집적거려 귀찮게 하면 나는 거기에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 표현이 흔히 말하는 `증상`이다.
갱년기, 만성비염, 알레르기 등등 나를 괴롭히는 증상들은 그 자체가 질병이 아니며 반대로 나를 지켜주는 행위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에 오인하여 기침을 못 하게 막거나 해열제, 호르몬제를 써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은 뱃전에 흘러든 바닷물을 퍼내는 것을 막는, 선체(몸)의 안정성을 해치는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 선박의 안정은 맷돌의 조정인 것처럼 인체의 안정(건강)도 같은 이치를 갖는다.
한방에서 음양의 개념이 부력과 맷돌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 쪽으로 치우치면 선체의 그것처럼 인체도 건강을 잃기 쉽다.
서로 반대되는 성질의 오묘한 균형 그것이 수화기제(水火旣濟)라는 훈훈한 상태를 말한다.
한방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두 성질을 음양(陰陽)이라 하고 水와 火의 성질로 표현한다.
세상에는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예외적으로 중력이 있으나 반중력이 있는지는 미지) 남자와 여자, 밤과 낮, 여름과 겨울, 물과 불처럼 서로 반대의 속성이 견제를 해서 한 쪽으로 지나치지 않게 해 준다.
한의학의 치료 개념은 만약에 인체가 밸런스를 잃어 제반 증상이 생길 때, 거시적 관점에서 균형을 유지하게 하여 바닷물(감기 등 외부 자극)이 애초에 넘어올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거 먹고살기 힘들었을 때는 섭취하는 에너지보다 소모하는 것이 많아 오는 불균형이 많았으므로 기운을 북돋아 주는 보기 보혈제(補氣補血劑) 등이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홍삼이나 인삼 등과 단백질이 풍부한 가물치, 흑염소 등등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정반대의 입장이라 잘 먹으면서도 노동이나 활동의 강도가 줄어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이다.
과잉에너지는 火로 방출되어 소모시켜야 하므로 화병(火病)이 과거보다 많이 증가하였으니 갱년기 증후군도 대표적 화병의 하나이다.
과거에는 십전대보탕이 보약의 대명사로 효과를 많이 보았다면 지금은 부작용이나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울러 홍삼이나 영양제 등도 같은 이치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으므로 권유하지 않는다.
에너지 과잉으로 발생되는 열을 식혀주는 청열 보음(淸熱補陰) 요법이 현대인들에게 많이 요구되므로
면역력 상승의 방법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그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
음양이 서로 원만하게 조율되면 뿌리 깊은 나무가 되고 샘이 깊은 물이 되어 외부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게 되며 이런 상태를 면역력이 왕성하다 하겠다.
故박경리님 소설`토지`를 보면 추수가 끝난 평사리에 농민들이 농악을 울리고 잔치를 하는 내용이 도입부에 나온다.
풍년으로 등 따시고 배부르면 세상 바램 없듯이 인체도 부족하거나 지나침이 없으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여름 뜰 앞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은 호미를 들고 아무리 제거해도 돌아서면 다시 자란다.
그냥 가을 서리 한방이면 추풍낙엽이듯이 음양의 화평은 손을 대지 않고도 대부분의 질병을 쫓아낼 수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양의학은 뭔가 정밀한 기계에 눈에 보이는 검진 결과 등 체계적으로 보이는 반면 한의학은 두루뭉술하고 비과학적이라는 듯한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인체(생체)는 수만 년을 생존해 오면서 인간이 사용하는 어떤 기술보다도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치료, 복구 기전을 지니고 있다.
인체가 요구하는 바를 증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배고파 우는 아이 성대가 잘못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배고파 젖 달라고 우는 경우 젖만 주면 저절로 울음을 그치고 방긋 웃음 짓지 않는가?
울음(질병 증상)에 현혹되어 울음을 막으려고 입을 막거나 성대를 찔러 대는 행위는 대증요법이라는 명목으로 문제 해결의 본질을 놓일 뿐만 아니라 상태를 악화시키기 쉽다.
한의학의 가치는 인체가 요구하는 바로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여 가려움을 해결하고 내 스스로 낫게 하는 것이 처음이자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