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습관인 갑다. 얼마 동안은 쓸 소재가 부족하더니 갑자기 밀물처럼 몰려오니....
10여 년 전만 해도 유학 망국론이 회자되곤 했는데, 유학이 진취적이지 못하고 실용적이지도 못하여
나라가 발전하는 데 발목을 잡는다는 피해 의식이 많았었다.
근자에 한국 문화가 글로벌 위상을 펼치자 그 말은 쏙 들어갔는데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떠오르게 한다.
소학(小學)은 옛 시절 어린아이들이 배우는 학업 입문서인데 물 뿌리고 마당 쓸며 어른 응대와 친구 간의 신의 등 마치 과거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유사한 내용들을 강조하였고, 그 이후에 시간이 남으면 학문에 나아가라 하였다.
소학을 거친 후 대학(大學)을 비롯한 논어, 맹자, 중요 등 사서 와 삼경 등으로 학문의 깊이를 더했다.
즉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학문의 전제 조건인 셈이다.
대학의 첫 장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4조목이 있는데 수신( 修身) 이전의 내용은 주로 생략되어 있다.
앞의 4조목을 보면 격물(格物-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함) 치지(致知-격물을 통하여 지식을 얻음)
의성(意誠-치지를 통하여 뜻을 굳게 하여 마음을 속이지 않음) 심정(心正-의성 이후에 마음을 곧바르게 함)이 있다.
심정 이후에 신수(身修)로 이어져 평천하에 이른다는 의미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사람의 도리를 기본적으로 함양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며 개개인도 거기에 준하는 도덕적 가치를 요구받게 된 것이 조선의 유학으로 인한 유산이다.
유학은 추상적인 것도 아니고 진부한 것도 아니라 사물이나 세상 이치를 깨닫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도덕과 생활 규범에 자연스럽게 결합된 사상으로 그 형식이 예법으로 표현된다.
더욱이 600년 조선시대 유학을 바탕으로 과거를 치르면서 일부 부작용이 없진 않았으나 실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 공정하게 입신양명할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것은 세습으로 굳어진 다른 나라의 관리 체계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공평한 제도였다고 본다.
우리는 염치를 자신의 존재감과 동일시하여 남의 것을 탐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거부하는 유전자가 조선시대를 지난 우리 선조들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금붕어가 물속에 있을 때는 물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물을 벗어나야 그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우리만의 세계에 머물렀을 때, 다른 나라의 삶과 문명이 마냥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세상이 개방되면서 우리가 그렇게 고리타분하다고 스스로 폄훼했던 우리 문화가 어느새 글로벌 리더로서 자리 잡음은
우리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유전자에 깊이 박혀 있는 선조들의 숨은 노력이 그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한다.
한의학도 언젠가 숨어있던 찬란한 치료 원리가 세상에 펼쳐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