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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May 17.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5(1.일체동관분1)

깨끗한 육안을 갖기 위해서는 상(相)에 대해 마음을 일체 비워야 한다.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육안부 여시 세존 여래 유육안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 有肉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육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 느닷없이 여래가 육안이 있느냐고 질문을 던지신다. 그리고 수보리는 여래가 육안이 있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안(眼)이란 안목(眼目)을 말하는 것이지, 눈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안은 육신이 가지는 눈이므로 이것은 여래가 삼계에 몸을 나툴 때 가지는 눈이다.


그러면 왜 여래가 육안을 가질까?


그것은 물질, 즉 상(相)을 볼 때 대응하는 눈이다. 그냥 겉모습을 보는데 다른 눈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통 생각하면 뒷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여래가 불안(佛眼)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시작해야 상식적이고 당연한 순서가 된다.


부처는 부처의 눈, 즉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모두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육안(肉眼)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 중생의 육안 그대로 여래(如來)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여래가 육안이 있으니까 우리 중생들의 육안도 당연히 여래의 육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육안은 왜 여래의 육안이 되고 있지 못할까?


엄격히 따져보면 우리가 사물을 정말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가?


그렇지 않다.


마음과 생각에 따라 자기 보고 싶은 부분만 크게 잘 보이고, 다른 부분은 조그맣게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다.


중생의 육안은 번뇌망상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한 여래의 육안과는 전혀 다르다. 여래의 육안이 깨끗한 거울이라면 중생의 육안은 때와 먼지가 뿌옇게 덮여있는 거울이다.

육안이 왜 중요한가?


천안(天眼)과 혜안(慧眼), 법안(法眼)과 불안(佛眼)이 보는 것을 현상(現像)과 상(相)의 차원에서 직접 확인하는 안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끗한 육안을 갖기 위해서는 상(相)에 대해 마음을 일체 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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