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안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고, 올바로 알게 되며 받아들이는 안목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습니다.
혜안(慧眼)은 말 그대로 지혜로운 안목이므로 정견(正見)을 가진 눈이다.
정견(正見)이 없어 눈만 있으면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심지어 잘못 알기도 한다. 잘못 알면 눈이 없어 보지 못한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흔히 가져온다. 보고 오히려 미혹되거나 고통을 가지는 것이 우리 중생이다.
지금 육안을 가진 사람이 맹인(盲人)보다 그 마음이 정말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혜안(慧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혜로운 판단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비로소 잘 알고, 올바로 알게 되며 받아들이게 되는 안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안이나 천안으로 보는 것을 잘 헤아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인지를 잘 아는 것이다.
그런데 왜 혜안을 천안(天眼)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는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자기 영혼과 마음과 지식과 지성이 총동원되는 안목인 까닭이다.
아직 법안(法眼)과 불안(佛眼)이 없는 상태에서 최대한 진리에 맞게 미루어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혜안(慧眼)을 갖기 위해서는 텅 비어있는 마음과 두뇌의 집중을 넘어서, 자기 영혼의 맑고 올바른 사고방식과 사고(思考)의 폭과 깊이를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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