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선사가 깨달음의 과정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단멸상을 염려한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법에 있어서 단멸상을 말하지 않느니라
해탈한 전등선사(傳燈禪師)들이 왜 깨달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줄 아는가?
그것은 그것을 말해주면 또 그것을 멋대로 상상하고 그런 모습을 얻고자 하는 망상(妄想)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깨달음의 열망이 강렬할수록 그런 환상(幻想)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오히려 해독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용변보고 싶으면 용변 보고 하는 등 보통 사람들이 하는 행동 이상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행동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앞에서 간단하게 설명한 깨달음의 상태는 단멸상(斷滅相)에 빠지는 사람이 워낙 많고 그렇게 되어 그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멸상에 빠지는 것이 깨달음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런 상태를 생각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니 잘 이해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화두도 생겼는데, 대개 학인들이 이 단멸상에서 깨달은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 사람은 이 단멸상(斷滅相)을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
번뇌망상이 어느 정도 쉬고 나면 자연적으로 생기게 되는 상태인 이 단멸상은 마음이 평화롭기는 하지만,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경계를 만나거나 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또 경계를 만나서 자기를 죽이기 때문이다. 단멸상에 빠져 제대로 된 반응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잘못된 단멸상(斷滅相)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식을 말하는가?
1. 모든 중생이 불쌍하다.
2. 경계를 만나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3.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4.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5. 아무 할 일이 없다.
6.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7. 세속을 떠나는 것이다.
8. 상(相)을 버려야 한다.
9. 상(相)은 나쁜 것이다.
10. 인연에 매이면 안 된다.
11.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한다.
12. 세속의 일은 수행이 아니다.
13. 모든 것이 공(空) 하니 인과(因果)도 공하다.
14. 모든 것이 운명이다.
15.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는 세속적이다.
등등.. 한도 끝도 없이 많다. 그 이치를 일일이 설명하려면 역시 한도 끝도 없다.
이런 생각을 갖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출발부터 단멸상(斷滅相)에 빠지는 것이고 점차 샛길로 새게 된다.
그렇다고 뭔가 있어서 그것을 찾고 얻어야 한다는 생각 역시 단멸상의 반대극(極)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其心)'을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