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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Jul 31.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6(9.불수불탐분1)

부처님법의 이치를 알면 스트레스가 자기 존재를 탈바꿈시키는 영약임을 안다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 칠보 지용보시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 七寶 持用布施)


약부유인 지일체법 무아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소득공덕

(若復有人 知一切法 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를 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일체법에 아(我)가 없음을 알아서 인(忍)을 얻어 이루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더 수승하리라


부처님께서 앞에서와 같이 칠보를 보시하는 것보다도 더 큰 공덕은 일체법 -일체현상- 에 대해 아(我), 즉 내가 없음을 알아서 인(忍)을 얻어 이루는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이전과는 달리 인(忍)을 얻어 이룬다는 말씀이 보시보다 더 큰 공덕을 얻는 특별한 조건으로 나온다.


인(忍)이란 '참는다'는 것인데, 인(忍)을 얻어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뜻함인가?


인(忍)을 얻는다는 것은 참는데서 오는 어떤 가치를 얻는 것을 뜻한다.


참는 것의 가장 큰 가치는 자기의 상(相)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相)을 가지고 있는 한 참는 것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참는 고통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자신은 아직 인(忍)을 얻은 것이 아니다. 단지 인(忍)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참는 고통이 사라지는 궁극적인 수준까지 가다 보면 결국은 참고 있는 자기의 상(相)이 소멸되어야만 참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인(忍)을 얻게 된다. 즉, 인(忍)이 완전히 자기의 것이 된다.


인(忍)을 얻은 다음에야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일체법에 아(我)가 없음을 알게 되어 능소(能所)의 구별이 사라진다.


주관과 객관, 나와 타 존재를 따로 나누어놓고 분별하는 차원에서 넘어서게 된다.


이른바 무아(無我)로서의 나가 있으면서 또 타 존재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때 비로소 진정한 부동심(不動心)이 이루어지게 된다.


즉, 부동심(不動心)을 가진 무아(無我)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부동심이란 말이 부동심이지,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다.


즉, 내가 있어 큰 힘을 갖고 어떤 경계가 닥쳐오더라도 그에 맞서서 꿈쩍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경계(境界)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경계 자체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경계와 상관없이 여여한 마음 그대로는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부동심(不動心)은 마치 모든 것을 그냥 통과시키는 허공(虛空)과 같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인(忍)을 얻어 이룬다는 것은, 처음에는 참다가 그것이 발전하여 참는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아가 일체법에 아(我)가 없음을 깨우쳐서, 참는 자기 자신과 고통을 주는 타 존재가 충돌하지 않고, 부동심을 가지게 되어, 마침내 무아(無我)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칠보를 보시하면 그 공덕으로 복덕(福德)을 누리지만 영원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보장하는 공덕은 아니다.


그것은 인(忍)을 얻어 이루어야만 가능한데, 그렇게 되려면 일체법에 아(我)가 없음을 아는 것이 첫걸음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모르면 참다가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병들고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불법(佛法)의 이치를 알고 조금만 체득해도, 살아가는 데에서 오는 크나큰 스트레스를 오히려 자기 존재를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최고 영약(靈藥)으로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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