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분명 아침 출근길에 숨 막히는 더위가 있었는데, 9월을 지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선선한 기분이 든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 달리 말하면 4개월 정도가 지나가면 25년도 끝이 난다는 말이다.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뭘 했다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간 걸까. 여름을 회고하기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고, 봄을 회고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초에는 감정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일에 익숙해진 건지, 그냥 삶에 익숙해진 건지 지금은 그냥저냥 괜찮아졌다.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자면 7월에는 이사를 했고, 6월에는 가족여행을 다녀왔었다. 4월에는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집에서 술을 마시며 놀았고, 1월에는 외가친척들과 경주를 다녀왔었다. 그 외에 틈틈이 친구들이든 회사사람이든 사람들을 만나는 날들이 있었을 것이고, 몇 변의 결혼식과 몇 번의 청첩장 모임을 다녀왔을 것이다. 그리고 출근 퇴근의 반복. 몇 번의 꾸준한 운동 다짐과 실패. 부모님과의 안부 통화. 집에서 빈둥거리기를 모두 더하면 나의 25년이 요약되는듯하다. 이 모든 일들에서 참 많은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있었는데, 표면적으로 남아있는 기록들은 그저 아무것도 안 한 25년처럼 보여서 뭔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다. 일도 나름 재미있게 하고 있고, 크게 스트레스받는 일 없이 편안하게, 그렇게 기쁘지는 않지만 무던하게 지내는데,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무던한 25년의 2/3을 보냈다면, 남은 1/3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마치 망한 실험결과들을 가지고 보고자료를 만들고 향후계획을 쓰는 기분이 든다. 가장 중요한 요소. 향후계획이 나쁘지 않으면 앞선 보고자료의 망한 결과들에 대한 질책을 덜 받을 수 있다. 다만, 대략 남은 4개월의 일정을 지금 자리에 앉은 한두 시간 동안의 고민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일단 추석 연휴에는 부모님과 춘천에 가족여행을 가려고 한다. 이번 추석연휴가 길어지다 보니 집에 고양이를 두고 오랫동안 본가에 내려가있기보다는, 부모님과 연휴기간에 내 집에서 같이 지내다가 2박 3일 정도 서울 근교 여행을 계획하였다.
그 외에 남은 기간 동안 찾고 싶은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혹은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외부 활동이나 취미 활동에 대해서 나는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에 그냥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크게 하고 싶은 것이 없고, 다 무난무난해서. 그 사람이 하자 하는 것에 좋다고 따라 하게 되는데, 그렇기에 혼자일 때 주말에 "이거 하고 싶어"라는 생각에 집 밖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집에 있으면서 맛난 거 먹고, 낮잠 자고, 고양이랑 놀고, 넷플보고.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그냥 이렇게 지내다 25년이 허무하게 끝날 것 같아서. 내가 혼자서라도 밖에 나가서 활동하고 싶은.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