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Y야. 현재 시각은 1월 1일 0시 5분이야. 조금 전에 제야의 종소리가 신년을 알렸어.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1년을 꿈꾸고 있겠지. 너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궁금해. 2025년 마지막 날을 사소한 다툼으로 끝내 마음이 편치 않네. 나의 왜곡된 독해로 화가 날 수 있었을 텐데 이해하려고 애써주고, 데이 출근으로 피곤함에도 새해 문자까지 남겨줘서 고마워. 어제 내가 눈물을 흘린 건 짜증 한 번 없이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너의 모습에 감동해서야. 네게 듬직한 모습만 보이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는 않네. 솔직히 고백하건대, 올해의 수험 기간에 두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야. 내가 과거에 비해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성숙해졌고, 네가 외롭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건 자명해. 다만 학업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본 경험이 없기에, 두 가지 모두 내게는 너무도 중요하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크기에 네가 절대 서운할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어. 더구나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마음의 크기가 이렇게 커 본 적이 처음이어서, 이 고양된 감정을 어떻게 잘 정리하고 건강하게 표현할지도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아. 이따금 너의 악의 없는 표현에 내가 서운함을 표하는 건 내가 너로부터 상처를 하나도 받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겠지. 내가 원만하게 사귀어온 우리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내가 너에게 상처 하나 주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일 거야.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봐. 인위적으로 통제된 멸균실이 아니라 균에 노출된 자연에서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걸 아는데도 이렇네.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미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원칙을 순간 잊게 했어. 받침에 ‘ㅂ’이 들어가는 이십 대 후반이 되었는데, 아직 배울 게 많은 어린이야. 이렇게 미숙한 나이기에 너를 항상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네가 나 덕분에 더 많이 웃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너는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존재거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근거는, 평생 새겨진 몸의 관성을 극복하고 있다는 거야. 낯선 곳에서의 잠자리가 불편하더라도 네 옆에서 자고 싶고, 학업 때문에 정신이 없더라도 짬을 너와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싶고, 두통이 심하더라도 네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달려가고 싶고, 전업 수험생이 되더라도 너에게 최대한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 누군가에게는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야. 내 태생적 예민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그에 필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밖에 없는 듯싶어. 아니지. 그 예민함 덕분에 너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게 더욱 적절한 표현이겠다. 마땅한 기초 스킨 케어 제품이 없는 거나 부실하게 식사를 챙기는 거나 나로 인해 다시 화장해야 한다거나 친구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거나 하는 것들은 전부 사소한 것들이지만 신경이 쓰여. 네가 필요한 것들을 내가 챙겨 주고 싶고, 네가 나로 인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은 최소화하고 싶어. 이를 다정한 말투 대신 “너와 다르게 이사 간 집 주소로 주문했어!”와 같이 너의 짜증을 유발하는 건 네가 나의 호의에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야. 우리는 가끔 유머의 형태로 이별을 가정하곤 하지. 「먼 훗날 우리」에서 “우리는 우여곡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샤오샤오의 바람과 달리, 미래를 향한 예측은 미끄러지고 가정법은 닥친 현실 앞에서 무력해.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물음에 너는 그건 모른다고 대답했지. 내가 섭섭해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지도 몰라. 페퍼톤스 신재평은 「여름날」에서 이렇게 노래해. “지구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 우리에게도 그래서 끝이 있나봐.” 내가 역할극을 통해 미래를 환기하는 건, 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마주하게 될 끝을 연장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야. 끝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현재에 미리 소환하면 막상 그 시나리오가 전개될 때 더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어바웃타임」에서 팀이 과거로 되돌아가서 더 나은 사랑의 형태를 빚으려고 하잖아. 나는 거기서 ‘과거’를 ‘미래’로 시제만 바꾼 셈이지. 시뮬레이션이 관계의 유통기한을 연장하는 일종의 사랑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팀이 메리에게 그러하듯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서라도 너에게 최선의 형태로 내 사랑을 표현하고자 해. 젠칭이 팀처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샤오샤오에게 어떤 말을 할지 상상해 봤어. 그리고 그 장면에 나와 너를 투영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 넓고 호화로운 서울의 집을 사줄 수는 없지만, 네가 아끼는 헌 소파를 소중히 생각하고, 네가 잡아달라고 신호를 보낼 때 놓치지 않고, 찐빵 두 통을 찌며 네 몫을 남겨두는, 그런 방식으로 너를 사랑할게. 마지막은 「중경삼림」의 경찰 223의 대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할게.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