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라는 상투적인 문장의 발설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결연한 실행 의지가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죽고 싶다”라는 말이 부쩍 늘어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건 예기치 않은 자극에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반사적이다. 반사의 조건은 무엇인가. 외로움. 막막함. 무료함. 우울함 ... 어둠이 짙게 깔린다. 영화로 시현하면 이치카와 준의 『토니 타키타니』이며, 노래로 시현하면 시규어 로스의 『All alright』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실존적 질문에 대한 실의의 답변.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합목적적인 존재가 목적을 상실했을 때 상상의 저승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분명히 자살할 생각은 없는데도 계속 죽음을 운위하게 되는 묘한 반어법은 산송장 같은 처지에 대한 자조에 가깝다. 물질적인 生과 정신적인 死의 교차된 형태는 역설을 부른다. 나는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
K-타임라인에서 뒤처졌다. 모두가 같은 주로로 경쟁할 때 비교우위는 속도에서 나온다. 너는 아직 늦은 나이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은 몇 살 때 돈을 벌기 시작했다더라.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를 위로하려는 마음씨는 방어기제로 중무장한 차단선을 뚫지 못한다. 고마워. 다시 기운 내야지. 웃는 외피. 해낼 자신이 없다. 뭐 해 먹고 살지. 슬픈 내피. 이제는 내가 진정 그 진로를 희망하는지도 혼란스럽다. 단지 명예를 위해 고학벌을 취득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할 게 없어서 가장 만만한 시험을 택한 게 아닌가. 재능 없음을 외면한 채 미련한 발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회 기여는 명분에 불과하지 않은가. 조급함을 달래고자 대강 이력서를 작성하여 몇 군데 지원했다. 당연히 전부 탈락. 간절하지도 않고, 관련 경험도 없는 나를 회사가 뽑아줄 리는 만무하다. 사회에서 나의 효용 가치는 제로다.
기말고사 공부 대신 망친 시험을 다시 풀어보았다. 내가 해도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재차 직시하는 게 두려워서 재대결을 미뤄왔다. 오늘 결심의 계기는 어제의 통화로 돌아간다. 연인에게 내가 내년에 시험을 못 봐 지방에 내려가도 괜찮겠냐 물었다. 그녀는 대답을 머뭇했다. 찰나의 침묵은 낮은 자존감으로 핼쑥해진 피부에 생채기를 남겼다.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의 가능세계 중 하나. 그걸 확정적 현실로 상정하고 갑작스레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머저리 같다. 그토록 혐오했던 패배주의가 나에게서 현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결정해야 했다. 내년 시험이 올해와 다를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지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괜찮았다. 시험장에서 이런 실수를 왜 했을까. 이 단락이 왜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을까. 패착이 하나둘 드러난다. 다만 시험 전에 스스로 정립한 원칙 대부분이 통용되었다. 옳은 선지는 추론의 강도가 높으므로 비교적 근거가 적확한 옳지 않은 선지 위주로 정답을 판별해라. 내가 틀린 문제 대부분에서 이 원칙을 놓쳤다. 애매하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판단한 선지가 전부 가능한 추론의 범위 내로 출제된 것이었다. 이미 한 번 읽은 지문임을 감안하더라도 해상도가 훨씬 높게 읽힌다. 글의 논리구조와 문제가 묻고자 하는 방향이 보인다. 해설서를 보지 않았지만 어떻게 써 놓았을지 추측된다. 1년 전보다 실력이 향상된 건 확실하다. 시험 직전에 본 모의고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다시 못할 정도로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더 해보자. 패배를 인정하고 패배주의를 극복하자. 그렇게 긴 고민의 끈을 매듭지었다.
나머지 고민도 갈무리할 때다. 우선 돈. 회사 생활을 안 해본 것 치고는 꽤 많다. 평소 돈을 잘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 온 덕분이다. 별도로 강의는 듣지 않을 예정이어서 시험 대비 지출은 교재비, 스터디카페 이용권, 모의고사 응시료가 전부다.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지만 상환의무는 취업 후에 발생한다. 이자가 쌓이겠지만 변동금리 1.7%로 시중금리에 비해 현저히 낮다. 다만 소득이 사라지는 게 변수다. 그간 해온 대외활동이 내년 초에 모두 종료된다. 고정지출은 매달 나가므로 자산이 감소하게 된다. 그래서 인턴, 알바 등 이것저것 돈을 벌 창구를 알아봤으나 당장의 돈이 급하지는 않으므로 이내 단념했다. 내년 중반기에 시험이 끝나므로 이후에 소득처를 찾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로 생활. 어떤 통제도 없으므로 늘어지기에 제격인 환경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딱딱 정해진 계획에는 진저리가 난다. 온종일 글만 보고 있으면 지칠 게 뻔하다. 올해처럼 지쳐도 악다구니를 써가며 앉아 있는 건 불필요할뿐더러 외려 장기간의 수험생활을 망치는 주범이 된다. 중용의 파훼법을 찾아야 한다. 필수조건은 다음과 같다. △08시 운동 △09시 시험공부 시작 △피치 못할 사정이 있더라도 1시간 이상 시험공부 △1시간 이상 영어공부 △스트레칭 △명상 △금욕 등 7가지는 무조건 지켜야 한다. 하나라도 어기면 시험 준비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자유를 몸소 누리기 위해 이외에 부수적인 것들은 자체 조정할 것이다. 스스로가 미련하다는 둥 이 시간이 무용하다는 둥 그런 자체적인 흑색선전은 중단하자. 대신에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함을 표하자.
양귀자 소설 「희망」의 한 대목. “내가 오늘부터 삼수생의 자리에서 이탈하기로 작정한 것은 정말 우발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니, 차근차근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그런 점이 있기는 하였다. 가령 어젯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잠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순간만 해도 당장 내일 아침부터 실행할 것이라는 결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무슨 명화처럼 벽에 붙여놓은 채 자신을 감금하는 짓을 자랑으로 여기는 모범 인간들을 나는 한 번도 부러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아무 때나 온몸으로 무언가를 느끼게 되면 나는 단박에 무슨 일이든 결행할 수 있었다. 학원을 그만두는 날이 바로 오늘이 되어버린 데에는 아무래도 햇볕이 마구 쏟아지고 있는 동쪽 창문의 붉은 커튼 때문일 것이었다. 오늘 아침의 붉은 커튼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내가 오늘부터 재수생의 자리에 착석하기로 작정한 것은 밤새 소복이 쌓인 보얀 눈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