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 친구 셋과 나 하나. 모임 결성의 계기는 특정하기 어렵다.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이었지만 당시에는 별로 가깝지 않았다. 내가 한 친구랑 친했는데, 우연히 20살이 되어 같이 놀게 되었다. 우리 사이는 꽤 각별했다. 글램핑, 체험전시, 방탈출, 클라이밍 등 그들과 처음을 함께한 게 여럿이다. 한 친구의 육사 예비생도 수료식에 참석했고, 다른 친구의 취직을 축하했다. 그들은 군 훈련소에 입소한 내게 인터넷 편지도 자주 보냈다. 우리는 참 유치하게도 놀았다. 시원찮은 우스갯소리와 애정 어린 폄훼에 웃음꽃이 피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유치원 해바라기반 친구들 같았다. 다만 서로 개인적인 연락은 거의 주고받지 않았다. 약속 파투도 흔했다. 멀어 보이지만 가까운, 끊어질 것 같지만 계속 이어지는 그런 유별난 관계였다.
2년 만에 만났다.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꼭 봤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만남이 미뤄졌다. 이번에도 한 친구가 시간이 안 된대서 약속이 불발될 뻔했다. 나도 목전에 시험이 있어 다음에 보자고 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내가 공부하는 곳으로 온다기에 원래의 약속 장소에서 보자고 했다. 작년만큼 조급하지는 않았고, 한 친구의 의대 합격을 축하해주고 싶었고, 내 소개팅을 주선해 준 다른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이렇게 열거해 보니 봐야 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사실 그들이 무척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신논현역에 내려야 하는데 실수로 그 전 역에 하차했다. 강남 대로변에서는 '윤 어게인' 시위가 한창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리암 갤러거의 'Too Good For Giving Up'을 틀었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인파를 이리저리 피해 가며 내달렸다.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 이를 옹호하는 확성기의 음성 위로 "Stronger than the damage done/Step out of the darkness unafraid", 자유민주주의와 그 속의 개인인 나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가 덮였다.
이제는 내가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숱한 무형의 당위가 나를 재촉했다. 그러면 원하는 모든 걸 달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생의 제일 목표는 경쟁에서의 승리였다. 내가 쉴 때 남들은 노력한다는 상투적인 말은 나를 자본주의에 종속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소중한 인연에게 생채기를 내었다. 그의 말대로 내가 달라지기는 했다. 그와의 관계처럼 계기가 명확하지는 않다. 관성대로 사는 것 같지만 기실 조금씩 변하는 게 인간이다. 이런 걸 성장이라 부르는 걸까.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만 나를 소진하지는 않는다. 목표를 향한 열정은 여전하지만 그것이 속도로 치환되지는 않는다. 조급함이 사라질 수는 없을 터이다. 다만 생각이 과잉될 때 잠시 쉬어가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이제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