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금기'라는 것에 대해 깊은 철학적 통찰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곳에 끄적일 아주 짧고 빈약한 단상은 그저 즉흥의 발로이거나 이미 존재하던 선인들의 사유를 조금 더듬어보는 정도, 자극적인 표현을 빌리면 베끼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기록의 목적으로, 그리고 성찰의 공유를 위한 하나의 시도로 하여금 이곳에 글을 남기어 보는 것이다.
금기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이를테면 성적 금기처럼 낯간지러운 감정과 뒤섞인 것들이 있는가 하면(음란한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수치스러운 감정과 관련이 있는 것?), 사회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의 각종 범죄, 규범과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들 역시 일종의 금기로 작용한다.
금기가 드러나는 양상은 더 다양하다. 금기는 규칙이기도 하다. 어느 생애적 단계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어길 때, 암묵적으로 수치심, 두려움, 위화감을 자아내는 것 말이다. 또한 수단으로써의 금기도 있다. 소수만이 할 수 있을 법한 것들에 의도적으로 희소성(금기)을 부여하고 이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억압과 제한, 규정과 같은 의미 따위의 어휘들은 인간에게는 어딘가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적어도 본인은 그렇다). 위의 금기들에는 이러한 억압의 정서가 녹아들어 가 있다.
그런데 종종 금기가 지닌 억압의 정서는, 그것이 억압하는 그 무언가를 향한 욕망으로 변질되어 지향의 정서로 거듭날 때가 있다. 금지된 것을 향한 욕망, 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하고 싶은 기묘한 마음. 나는 이를 금기가 지닌 양가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외면적으로는 모두가 기피하지만 내면 깊숙한 어딘가에서는 지향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특성. 금기가 자아내는 이러한 모순적 정서는 우리의 욕망을 더 날카롭게 한다.
사람들은 금기를 깨고 억눌린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날 때에 인간의 살아있음이랄까, 그러한 것을 느끼게 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성장기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러한 감정은 더 자주 드러난다. 중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현상들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어른스러움'을 흉내 냄으로써 얻는 우월감, 금기를 넘어섰다는 한시적 해방감, 그리고 무의식에 흐르는 짧은 쾌감. 금기가 금지 대상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변하는 것이다.
금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 두려움은 때로 누군가에게 허상적인 우월감을 부여해 준다. 남들과의 차별감을 느끼고, 근거 없는 우월감을 과시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금기를 어겼다는 사실만으로 자신만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믿는 사람들. 그곳에서 특별함을 찾는 이들. 그러나 그곳에는 실체가 없는 무가치함만 있을 뿐이다. 그들의 행동들은 누군가에게는 경외감, 열등감 따위를 불러일으키지만, 금기를 깨는 순간 얻었다고 착각하는 힘 역시 허상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위악 따위의 것들은 금세 유치한 과시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그들에게 냉소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그러나 실제로 심하게 야유할 것까지의 필요성은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한다. 이는 또 다른 허상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금기가 만들어내는 수치와 억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조금은 자유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어떻게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관념과 전통을 의심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 '진리'라 여겼던 생각들조차 재질문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금기라는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작동 방식이 어떻게 욕망을 형성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이해는 앞서 이야기한 우리를 억압하는 세력으로부터의 해방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적 성찰의 깊이를 깊게 할 수 있는 발판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오랫동안 수치스럽게만 느껴졌던 감정들-욕망, 질투, 증오, 배신, 모멸감 등-을 직시할 용기를 준다. 혹은 용기에서 더 나아가 그저 담담하게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감정의 벽을 허무는 일이랄까?
내가 정의하는 '어른스러움'의 여러 가지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위와 같은 태도이다. 금기에 무의식적으로 굴종하는 것도 아니고, 무턱대고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금기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 금기를 통해 파벌을 만들고 스스로의 가치를 부풀리는 사람들에게 담담히 "그게 무엇을 증명하는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 온갖 불쾌가 교차하는 감정조차 피하지 않고 스스로 재해석할 줄 안다.
우리는 때때로 금기를 깨는 행위에서 해방감과 도취를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이 진짜 자유인지, 아니면 단지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또 다른 장치인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조작된 허상을 우월감으로 착각하지 않는 일, 그것이 아마도 성숙함의 출발점 중 하나일 것이다.
진짜 해방은 금기를 깼다는 사실이 아니라, 금기가 만들어낸 허상을 더 이상 자신의 가치로 착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