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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21. 2024

짚신나물의 변명

난, 신을 존중하는 것이 삶을 신성하게 만든다고 믿기에 내 여행을 쉽게 보고 아이들이 날 선망한 거라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그들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도왔어. 그래서 내 신념에 후회가 없어. <짚신나물의 변명 요약>

숲과 들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 짚신나물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씨앗이 짚신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짚신나물로 불려지게 됐지. 무전여행의 오명 또한 갖게 되었어. 그런데, 이 땅에 짚신이 나온 것은 2천 년 전이야. 짚신은 볏짚을 꼬아서 만드는데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멍석, 삼태기, 꼴망태, 도롱이, 둥구미, 섬 등 가재도구를 만들어 썼지. 내 씨앗에는 갈퀴가 있어서 사람들이나 동물에 의지해서 멀리 여행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짚으로 만든 것에 달라붙기가 좋았어. 그때 짚신은 사람들의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신던 국민운동화였지. 덕분에 여행이 무척 편했던 건 사실이야. 내가 붙은 짚신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지. 그런데 세상이 바뀌기 시작하더라. 양반들은 짚신을 신는 것을 점차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어. 부들이나 왕골로 만든 짚신이나 삼을 섞어 삼던 미투리도 마다하고 가죽신을 신으니 거기 내가 붙기가 어려웠지. 그들 보기에 난, 힘없고 못 사는 백성 발에 붙어먹는 놈이 된 거야. 하지만 내가 존중한 신은 양반들의 가죽신도 아니고 백성들의 짚신이었어. 오히려 양반들이 존중한 신은 백성이 아니라 그들이 움켜쥔 지휘와 특권이겠지.

짚신에 붙은 짚신나물 씨앗을 상상해 봐

내가 노력하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만 받았을 거라 생각하는 건 착각이야! 짚신도 짝이 있듯 난 동반자가 필요했어. 내 씨앗에는 갈고리 같은 털이 있는데, 누군가 지나가길 빌어야 하는 운명이었거든. 그래서 사람들 곁에 머물기로 했지만 세상엔 공짜란 없지. 날 나물로 부르듯 사람들에게 내 어린 새순을 아낌없지 주었지. 나도 살아야 하니까 맛을 내진 않았어도, 설사나 배탈을 막았던 국민 상비약이었어. 이런 날 보고 아이들이 공짜 여행을 부러워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비약이야. 아이들이 선망하는 일은 운동선수, 아이돌, 유튜버래. 짧은 도움을 받는 것보다 오랜 관심을 받는 일을 선망하는 거지. 오히려 내가 의지한 짚신은 사나흘 밖에 신지 못해. 소가 비빌 언덕이 아니라는 것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지, 며칠의 여행을 위해 내가 준비한 것은 일 년인데,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을 거야.  

내 꽃말은 감사야. 짚 속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 힘들듯 세상에 난 작은 존재이고 그 안에 감사를 품는 건 더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해. 하지만 내가 누린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모른 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세상에 태어난 내게 슬픔이 깃들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해. 짚신은 내게 미래를 주었거든. 내 짝꿍에게 깊은 감사를 남기고 싶어. 내 감사에는 배앓이를 낫게 해 달라는 작은 소망을 담았지만, 이제 세상은 변했고 내 짝꿍 짚신도 볼 수 없게 되었어. 아쉽지만, 아이들은 짚신 아닌 다른 짝꿍을 찾겠지.  누가 될까 궁금한데,  짝꿍을 찾는 것은 그들이 도전해야 할 길이니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짚신나물의 노래>


풋기운 노란 꽃들, 꿈꾸는 집시 유랑.

헌신짝 고리 걸어 발아래 버금 걷네.

감풀던 길라잡이 고마움 새뜻했지.

내 짝꿍 어디 갔나? 그 시절 하염없다.


- 짚신나물 외에도 가막사리, 도깨비바늘, 쇠무릎, 도꼬마리, 도둑놈의 갈고리도 무전여행의 대가들이다.  풀밭에 들어갔다가 신발과 옷에 붙어 있는 씨앗을 너른 자리에 앉아서 떼어내면 씨앗 라이더가 된 것이다.

씨앗 달린 짚신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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