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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18. 2024

머리와 꼬리의 대화

달개비와 꽃범의 꼬리

"범꼬리가 닭 볏보다 낫지 않아? 내가 고고하게 남색 꽃을 피우고 청청한 댓잎을 내도 닭 볏을 닮았다고 달개비라 부르는데, 이왕 이름 붙여줄 거 범꼬리가 더 근사한 것 같아!" 

달개비 (닭의 장풀, 닭의밑씻개 등 닭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달개비의 푸념에 꽃범의 꼬리가 피식 웃으며 답했어. "거참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나? 머리가 하라는 데로 따라가는 게 뭐가 좋다고 부러워하냐? 범의 이름에 기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야!"

그 말에 달개비가 "허이고! 머리면 뭐 하냐! 머리 대접인들 제대로 해주는 줄 아니? 날 닭의밑씻개로 부르며 아주 하찮게 보는데 가관이지! 닭 볏이 무슨 벼슬도 아니고 사양하고 싶어" 

꽃범의 꼬리가 표정을 바꾸더니 "사람들은 마치 꼬리가 없으면 몸통을 흔들지 못할 것처럼  그들 욕심 속에 나를 키우지. 하지만 넌 머리도 되고 꼬리도 되니 북 치고 장구치고 네가 살고 싶은 곳에서 네 멋대로 살지 않나? 사람들이 뭐라 하든 나도 너처럼 살고 싶어!"

꽃범의 꼬리 (북아메리카 원산)

꽃범의 꼬리 말을 들어보니 내 의지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화단에서 키워진다면 더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닭볏과 닭밑씻개라는 오명을 듣기도 싫었고 남들에게 감추고 싶어서 네가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제말을 들어준 것이 좋았는지 꽃범의 꼬리는 "내 처지에는 어쩔 수 없긴 해도 머리가 싫다고 꼬리를 감출 순 없지. 나도 널 부러워하기보단 이 화단에서 살아내야겠어!" 하며 제 의지를 꿋꿋하게 말했어.

"그 말이 맞아!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숨기는 것이 더 문제일 거야! 닭 볏이면 어떻고 닭 밑씻개면 어때? 당당히 꽃을 피워내고 허리가 끊어져도 바닥을 기어 뿌리내리고 살아내는 거지. 머리와 꼬리가 한마음으로 제할 도리를 다해야겠지. 요즘 세상이 그런 것 같아. 머리가 머리 같지 않고 꼬리가 꼬리 같지 않아. 그저 따라가는 게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어. 남을 존중하지 않고 제 권리만 주장하는데, 책임과 의무는 제대로 하는지도 모르겠어. 머리를 향한 잣대와 꼬리를 향한 그것이 같은 것일까 생각해 봐. 누가 꼬리이고 누가 머리일까? 꼬리가 머리인 줄 아는 것 같아. 모두의 뜻이 머리이고 그 의지에 따라 행하는 자가 꼬리일진대, 그것이 한 몸이 되지 못하니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지. 뱀 머리와 꼬리가 서로 싸우다가 불구덩이 속에서 죽은 탈무드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무서워졌어. 나와 꽃범의 꼬리 꽃말은 순간의 즐거움과 젊은 날의 회상이야. 모두 순간이고 찰나인데, 싸우는 것을 멈추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보자고. 나만 사랑하는 아롬사랑에서 멈추지 말고 모두 사랑하는 모럼사랑하면 어떨까? 그렇게 다시 해보자고"


달개비의 노래 (닭의장풀)


이른 아침 남색 꽃잎 하늘을 담았는데

닭볏 놀림 부끄러워 새침한 하얀 입술 

한낮 더위 미련 없이 향기만 남겼구나!

댓잎 절개 꺾여도 구르며 살아가네.

달개비는 오전 일찍 꽃을 폈다가 한낮에 진다.

-개비는 귀주머니의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로 귀주머니를 오므린 모양이 닭볏을 닮았다. 이 말에서 달개비가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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