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 Aug 03. 2024

정의란 무엇인가?

초롱꽃의 정의

내 이름은 초롱꽃. 사람들이 지은 꽃말이 정의래. '정의'라니 내게 알맞은 말일까? 2억 8천 년 전 식물과 벌레 모두 커다랬는데, 요즘처럼 어울리는 짝은 아니었어. 그런데 산소 농도가 줄면서 네 번이나 대멸종을 겪다 보니 살기 위해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벌레도 마찬가지였어. 커다랄 때는 몰랐지만, 변화가 잦다 보니 빠른 성장과 번식이 필요했지. 작아진 벌레도 먹이가 필요했어. 그래서 우린 벌레에게 수액과 꿀을 주고 벌레는 꽃가루를 멀리 보내서 씨앗을 맺게 도와주게 된 거야. 그러나 꽃가루를 옮기는 것은 나 몰라라 하고 훔쳐가는 벌레도 생기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잎이나 줄기를 갉아먹는 벌레도 나타났어. 우리도  달콤한 향기로 그들을 잡아먹기도 했지. 삐그덕거렸어도 벌레는 삶터와 먹이가 생겼고 우린 튼튼한 아이를 낳아 퍼뜨릴 수 있게 되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았지. 사람과도 똑같은 사이를 이뤘어.  낱알과 과실 같은 먹이를 나눠주고 옷과 집을 짓도록 몸을 내어주는 대신 사람들이 우리를 가꾸도록 했으니까. 

초롱꽃

그런데 사람들하고 불협화음은 벌레와는 달라. 늘 숨 쉬는 데 없어선 안 될 산소를 나눠 주는데도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숲을 제멋대로 파괴해서 오랫동안 땅별을 지켜왔던 푸나무들이 사는 숲을 제대로 망가뜨렸어. 글쎄 수억 년에 걸쳐 무성했던 열대우림은 땅별의 허파라고 부르기 민망해졌어.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벌레와 도움을 주고받기까지 오천만 년이나 걸렸기 때문이야. 공룡시대 주로 육식하던 개미가 우릴 좋아하기까지 애쓴 노력은 정말 대단했지. 그런데 너흰 작은 시간조차 주지 않으니 우리 사이에 틈이 벌어진 것 같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내 꽃말 정의를 떠올려봐! 어린애들도 제 것이 아니면 임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지. 그리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도 있어. 우리도 내 것인 양  땅에 뿌리내려 살고 있어도 때가 되면 가진 것 떨구고 땅으로 돌아가거든. 너희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잖아. 내 것 같아도 전부 땅별에서 빌려 누리고 있어. 잘잘못을 가리고 누구를 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빌려 쓰는 처지에 함께 살 수 있게 존중하자는 것이지. 그것이 내 정의야.  

섬초롱

난, 여러 해를 살면서 한여름마다 작은 종을 닮은 연한 자주색 꽃을 피워. 꽃이 피기까지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리고 녹이고 온 신경을 쓰며 혼이 담긴 종을 만들듯 나도 같은 마음이야. 쇠로 만들어진 범종이 쇳소리가 아닌 우주 만물의 진리가 울리듯 내가 핀 꽃은 산 것과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 소리 없어도 향기가 새벽바람 청사초롱처럼 떨리며 숲을 채우곤 해. 언젠가 꽃을 피울 수 없게 되면  종을 만든 대장장이가 떠났듯 누군가 내 맘을 이어가길 바라면서 자리 내어주고 떠나겠지. 어쩌면 이것이 정의가 가는 길이 아닐까 싶어. 물론 내 생각과 다른 이들도 있을 거야. 꽃도 나무도 벌레도 사람도 모두 제각각 다른 모양, 다른 생각이 있겠지. 하지만 그들 모두 생명을 살리는 땅을 딛고 살잖아. 뿌리가 하나이니 펼쳐진 가지가 많아도 결국 돌아가는 곳도 하나야.  뭐가 정의인지 맞다 그르다 다투지 말고 제 스스로 정의롭게 살면 되는 것 같아. 그 뜻(義)이 모여 물길을 내면 마르지 않은 강이 되고 정의의 바다에서 만나겠지. 

너무 머리 아픈 이야기지? 내 뿌리가 열을 내리고 두통을 가라앉히는데 탁월하대. 병 주고 약 주고 인가? 나뿐만 아니라 금강초롱과 섬초롱이 깊은 숲과 외딴섬까지 이 땅을 밝혀주고 있어. 그들 말로는 꽃을 피웠더니 졸지에 초롱꾼이 되어 버렸다지? 우리처럼 사람도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 우리 땅별 세입자끼리 좋은 세상 꾸려가자고.

청강초롱


작가의 이전글 침묵의 여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