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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Aug 08. 2024

 바닷가 행복한 갯완두

사랑은 바위에 새기고 슬픔은 모래에 흘린다.

거센 바람이나 세찬 파도에 더 이상 부서지지 않는 모래. 한 방울의 물조차 품고 있지 않아 뜨겁게 내리쬐는 바닷가에선 담담해 보이지만, 모래는 세상의 온갖 시련을 견뎌낸 메마른 눈물의 알갱이이지. 그 모래 구덩이에서 짠내 바람결에 피는 꽃이 있어. 불구덩이 속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고 덩굴손으로 모래밭을 뒹굴며 보란 듯 보라색 여름꽃을 피워내는 갯완두, 바로 나야. 사막이 선인장을 선택한 것이 아니듯 나도 이곳이 좋다고 머문 것이 아니야. 바다가 고향이지만, 땅을 떠나지 못해 가까운 모래밭에 살게 되었어. 움을 틀 때 보니 응어리진 모래를 한 알 한 알 헤이며 나도 모르게 모래품을 깊숙이 파고들게 되었지. 사막에는 아름답다는 우물도 숨어있다는데, 내 작은 손으로 수백만 번을 기어가 깊게 뿌리를 내려도 짠물 밖에 없어. 책과 현실은 어쩜 그렇게 다르니? 그리움은 먹을 수 없는 거지. 모래밭은 내겐 살아내긴 너무 힘든 자리야.

바위 곁 모래밭에 자리 잡은 갯완두

내 곁엔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순비기나무가 있지. 마치 해녀처럼 바다를 둥둥 떠다니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대. 그녀의 꽃말은 그리움이래. 바다가 그립지만 나처럼 바닷가에 머물게 된 거지. 내가 모래를 헤집듯 그녀는 바위를 두드리며 제 맘을 심었다지. 파도는 바위를 깎을 순 있지만, 그곳에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는 따개비나 그녀 뿌리의 작은 힘만이 살아갈 틈을 내지. 흔들림 없지만, 말 못 하는 바위에 그녀 삶을 아로새기고 있어. 그녀가 말하길 "바다에 가지 못한 슬픔을 이곳에 남길 순 없지. 난 이곳에 바다 사랑을 남길래" 그 말을 듣고 얼이 빠졌어. 난, 모래에 무얼 남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순비기나무

바닷가 모래밭엔 짠한 사연들이 가득해. 흠집 없는 조약돌보다 흠집 있는 다이아몬드가 낫다지? 그런데 이 바닷가에 흠집 없는 조약돌이 있을까? 맨들 거리는 조약돌조차 바위였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깎여졌어. 그런데 모래는 조약돌 보다 작은 응어리로 이 해변을 채우고 있어. 수많은 눈물의 자아들이 짠 바다를 만들지도 몰라. 바다를 향한 그리움도 깊은 산부터 여기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간직하며 소소히 떠내려와 이곳에 남은 것은 오직 작열하는 태양 아래 짜낼 수 없이 뜨거워진 메마른 과거뿐. 이곳을 찾은 연인들은 하얀 모래를 밟으며 그 부드러움에 만끽하지. 그것을 보고 나도 마음먹었어. 내 삶터에 굳이 나까지 모래와 같은 맘이 되긴 싫었어. 난 기쁨을 담아야겠어. 시간이 지나 잎이 자라는 것을 보면, 슬픔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간뿐이래. 모래가 보낸 시간을 내가 무슨 수로 채워? 하지만, 슬픔 가득한 손톱보다 기쁨 넘치는 발톱을 더 빨리 자라게 하면 되잖아? 지금 어쩔 수 없어도 모래밭 걷는 이들에게 그 마음 줄래.

내 꽃말은 미래의 기쁨이야. 살며 얻은 상처는 이 모래밭에 흘리면 되는 거지. 난 그들에게 살아갈 힘을 돌려줄 거야. 사랑도 두 손에 움켜쥔 모래처럼 빠져나가기 쉽잖아? 내가 도움 안 되는 것들도 같은 거지 뭐. 발가락 사이 쑤욱 나온 모래처럼 빠져나가면 좋지 않을까? 내 아이들 역시 바닷가 떠돌다 마음 머문 곳에서 기쁨을 전해주면 좋겠어. 곁에 순비기나무를 바라보며 바위에 새긴 사랑을 체험했으니까 그들도 제 기쁨을 어느 이름 없는 모래사장에 남기겠지. 마파람이 분다. 게들도 눈 감추는 뜨거운 바람이 비를 몰고 왔어. 햇볕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나처럼 빗속에서 춤춰본 이는 없을 거야. 모래밭에서 찾을 수 없었던 우물을 지금 찾았기 때문이지.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슬픔을 밀어낸 자리, 소소한 기쁨은 갈증 나는 가랑비 같을진 몰라. 하지만 행복하다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어?  어때 바위가 아닌 모래에도 사랑을 담아 보지 않을래?

바다와 육지를 잇는 소중한 염생식물, 갯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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