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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Sep 09. 2024

큰금계국, 더불어 사는 삶

사람들이 내게 큰금계국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생태 교란종이란 멍에를 씌웠어. 난 열심히 산 죄밖에 없어. 그런데 앞다퉈 심고 축제를 벌이더니 이젠 해가 된다고 죄인 취급을 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형국이라니. 어이없는 건 나와 금계국을 구별하지 못하더라고. 도시부터 농촌 그리고 깊은 숲에서 날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 듯 금계국을 괴롭힌 게 아니야. 북아메리카에서 이곳에 왔을 때, 이 땅에서 토종 금계국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거든. 제대로 아끼고 돌봐주지 않은 건 너희들이란 말이야. 농부나 어부에게 잡초와 잡고기가 있을 뿐 필요 없는 생명은 존재하지 않아. 자연 그대로 어울리지 않고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려는 너희가 오히려 생태 교란종이야. 내 말이 억지 같다면 너희 때문에 사라진 생명과 파괴된 자연에게 변명이라도 해봐. 하지만 내 말은 누군가 들어주면 좋겠어.

큰금계국

내 고향은 드넓은 초원으로 가뭄과 무더위뿐만 아니라 날 괴롭히는 벌레와 초식동물들로 삶을 위협받았어. 그래도 억척스러운 뿌리와 열매로 군집을 이루며 살아냈지. 그렇다고 나만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건 아니야.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벌과 나비에게 꿀과 꽃가루를 내어주고 씨앗은 새들의 먹이가 되었지. 그렇게 척박한 땅은 여러 생명들의 삶터가 된 거야. 그걸 보고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선 강둑을 보호하고 철로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날 심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제 역할을 했는데도 얼마 되지 않아 나로 인해 토종식물들이 밀려난다며 배척하기 시작했어. 내 의지로 이곳에 온 것도 아닌데 미움받는 건 정말 억울해. 만약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는데, 여러 이유로 차별받거나 돌아가라고 한다면 너희도 좌절하게 될 거야. 

번식력이 높은 부레옥잠

식물도 제 터를 지키려고 군락을 이루듯 너희들도 그러고 싶어 하는 걸 알지. 그런데 나라마다 불법으로 밀입국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을 철책으로 둘렀어도 쉽지 않았지. 열 포졸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말도 있잖아. 내게도 철책 따윈 별의미도 없고 뿌리만 내릴 수 있다면 어디라도 군락을 이룰 거야. 미국 미시시피강에 퍼진 부레옥잠은 원래 남미에서 왔는데, 꽃이 아름다워 들여왔다가 널리 퍼지게 되었지. 배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수로까지 덮어버려서 골치가 아팠는지 불로 태우고 화약으로 폭파까지 했는데, 오히려 부레옥잠 영역이 넓어지게 되었어. 원래 억누르면 반발심이 더 커지는 게 아니겠어? 여러 이유로 무작정 들여온 생명들이 제 뜻대로 될 줄 알았겠지만, 수백만 년 동안 다양한 환경에 적응한 우리를 무시하는 거야. 식용으로 들여온 황소개구리가 너무 퍼졌다고 호들갑 떨며 난리 치다가 어느 날 토종 생태계의 매운맛에 줄어들었다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 너희가 한 게 뭔데? 

강둑과 철로변에 심어진 큰금계국

이 땅의 토종식물이 아닌데도 나팔꽃처럼 한해 살고 죽는 식물들은 별 위협이 되지 않으니 예뻐하면서 여러 해를 사는 난 더 괄시하는 것 같아. 이렇게 오래 살면 영주권이라도 줘야 하는 게 맞지 싶은데, 꿔다 놓은 보릿짝 신세라니 참 처량하다. 나라를 잃은 기분이 이런 걸까? 이쯤에서 서로의 귀를 열고 들어보자고. 힘으로 풍선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것을 알자나? 너희가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함께라면 해낼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난 키우거나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비나 눈, 바람으로부터 토양과 양분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낼 수 있지만 자라는 걸 멈출 순 없지. 그건 너희가 해야 할 일이야. 난 내 삶과 땅을 살릴 테니 넌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금계국(좌), 기생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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