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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Sep 11. 2024

철부지 모모, 해바라기

철부지 모모, 해바라기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노랫말을 들으면 모모가 나인 것 같아. 난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야.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도 해를 쫓아가듯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아시아에서 베링해협을 건너와서 날 찾아냈는데,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이 귀하게 모셔갔고 다시 아시아대륙으로 퍼지게 되었지. 그런데 무지개를 닮지 않았다고? 그건 날 잘 모르는 소리야. 노랑꽃과 초록 잎 그리고 씨앗에는 파랑, 검정, 보라, 빨강 염료가 들어 있어. 내 곁을 무지개로 채웠지만, 세상은 내 맘같이 예쁘고 화려하진 않더라. 그래서 골 아프게 이게 맞니 저게 옳으니 하는 것보단 철부지로 살기로 했어. 겨우 한해밖에 살지 못하니까 나 하나 살기도 바쁘니까. 어떤 이는 내가 해를 쫓아다닌다고 했는데 반만 맞는 말이야. 어릴 때 잘 자라기 위해 쫓아다닌 것 맞지만 해를 잘 받은 꽃에 곤충이 잘 찾아와서 하늘을 보긴 해도 해를 따라다니진 않아. 열매 맺으면 이내 고개를 숙이게 되지. 러시아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제거 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호들갑 떨었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해바라기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일편단심

고향에선 그리 큰 꽃은 아니었는데, 땅별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사람들은 내 꽃을 키웠지. 꽃이 커지면 당연히 씨앗도 커지니 얻어낼 것이 많았나 봐. 내가 아무리 이래저래 상관없다 했지만 자기들 입맛대로 꽃도 더 작게 만들거나 꽃가루도 없애 버리기까지 하니 미용실 온 강아지 신세 같아. 난 하나의 꽃처럼 보이지만 제법 많은 꽃을 품은 꽃무리야. 연방국가인 미국이나 영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방 헌법처럼 나도 하나 줄기에 각기 다른 열매를 맺어. 그런데 열악한 환경이 되면 살아내려고 돌연변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감자, 당근 같은 식물들도 과거엔 작은 뿌리였어. 여러 환경을 바뀌면서 지금의 다양한 크기의 열매가 된 거지. 너희도 살기 위해서 그럴 수 밖엔 없었겠지만, 부모 뜻대로 살아가는 자식이 행복할까? 국화는 서리를 맞아도 꺾이지 않는다지? 나도 국화과라서 거칠게 보일 정도로 꼿꼿해. 그리고 씨앗을 고개를 숙이고 보살피는 부드러움도 갖고 있지.

그래도 난 아직 철부지야. 한해밖에 살지 못하니 수레가 지나간 바퀴 자국 속에 들어있는 물고기 신세 같아. 그렇다고 좌절하는 건 나답지 않지. 그냥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야. 해만 바라보는 대낮 올빼미 되긴 싫다고. 그런데 권력에 아부하거나 힘이 있는 이들 턱 밑에 붙어 사는걸 해바라기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난 빌어 먹는 하룻강아지가 될지라도 호랑이에게 절하고 싶진 않아. 세상 물정 모르는 날 그려낸 고호가 그런 내 열망을 봤는지도 몰라. 시들고 피어나는 그곳에 자리 잡은 노란 열망. 삶이 저물어가도 난 그곳에 남아있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름을 남기고 싶은 너희들과 같은 마음일 거야.  

꽃을 좋아한다고 그 꽃을 꺾기보다 물을 준다면 사랑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일 아닐까?

우리가 제일 많이 자라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어. 누가 맞고 틀리고를 따지고 싶진 않지만, 공것 바라는 무당 서방처럼 남이 가진 것을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 전쟁이지. 당연히 우린 제대로 클 수가 없고 설령 열매를 맺은들 수출 길이 막혔으니 아무도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없게 되었어. 평화롭게 살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제 배를 불리거나 남의 어려운 상황에 돕지는 못할망정 봇다리 내놓으라는 도둑 심보로 싸움을 말릴 생각조차 없지. 오죽하면 시민이 총기로 죽어도 그걸 막기보단 사람 탓만 하고 무기 팔아먹을 생각이 더 큰 이들이니 남의 나라 일에 주판알 튕기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게다가 이 땅별 여기저기 숲이 불타고 있어도 자투리 이야깃거리가 될 뿐 관심은 누가 제일 잘 싸우느냐인 거야. 결국 사람들은 철부지 자리까지 내게서 빼앗아 간 것 같아. 너흰 도대체 무얼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니?

무지렁이 꽃도 철부지 식물도 없다. 모두 제 갈길을 알고 찾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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