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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Sep 18. 2024

빛과 그림자

식물이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을 동경해. 깊은 해저와 지하 세계 그리고 거대한 우주에 가는 꿈을 꾸지. 이젠 상상에만 그치지 않고 심해와 우주까지 돌아보는 꿈을 이뤄냈어. 그런데 태초로부터 인류가 지구를 지배했다고 믿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풀조차도 인간보다 지구에 뿌리내린 역사가 엄청나게 길다고. 해를 쫓아 바다에서 올라온 우리 식물들은 광합성을 할 때 만들어낸 산소를 분해해 줄 생명체가 필요했어. 마침 공룡이 대량으로 산소를 쓰고 우리에게 이산화탄소를 돌려주던 가장 적합한 생명체였지. 인류의 조상은 그런 생명체 중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뒤늦게 합류한 생명체에 불과했어. 우리 식물이 글로벌 기업이라면 인류는 아프리카 오지에 있는 구멍가게 고객이었던 셈이지. 

마음껏 산소를 쓰고 무책임하게 버린 이산화탄소

우리가 인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간과한 게 있었어. 다른 동물과 곤충들은 제 활동으로 산소를 소모했지만, 인류는 불을 발견한 이후 자신들의 집단을 점점 크게 만들더니  우리에게 점점 중요한 고객으로 올라서게 된 거야. 공룡이 멸망하면서 인류는 주변 환경에 가장 빨리 적응하면서 다른 생명체들은 그 경쟁에서 밀려나가기 시작했어. 문제는 우리조차 그 밀려나는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거야. 공급자에서 대형 고객이 쓸 산소를 제공하는 하청업자로 밀려나버렸어. 산소는 그저 인류의 소모품에 불과했지.  파괴된 자연 위에 도시와 공장이 되고 그곳에서 소모되는 각종 연료가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는 하늘, 땅, 바다가 품고 만들어내는 공기의 흐름을 무뎌지게 했어. 너희 스스로 옥죄고 있는 걸 뒤늦게 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의미에선 지금 상황이 우리 식물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야. 우리가 처음 육지로 올라오기 전 지구는 산소가 거의 없었으니까. 인류가 사라지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히려 우리가 살기 좋은 세상이 열릴 거야. 너흰 산소가 꼭 필요하지만, 산소를 독으로 여기는 생명체도 많아. 갯벌 속에 숨어 사는 애들이나 동물 뱃속에서 산소를 피해 근근이 버티며 암흑기를 살아가는 애들도 있지. 

마지막 희망 바다, 그런데 현실은...

남극이 서서히 녹아서 그곳에 얼어있던 메탄가스가 지구를 덮으면 그것을 반기는 생명체가 좋아할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뜨거워질 지구를 기다리는 생명체도 있지. 너희가 힘의 근간을 산소로 사용했을 뿐이야. 인류는 공룡보다도 더 빨리 멸종될 생명체로 남겨질 예정이야. 우리 식물들은 다시 지금과 같이 자신만 아는 인류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현재를 깊이 새기고 있어. 동물을 먹이로 생각하는 식물도 있다는 것을 아니? 인류 문명은 우리가 보기엔 모래 위에 쌓아 올린 성이야. 아즈텍이나 잉카의 문명이 식물로 덮여서 폐허로 바뀐 모습을 보지 않았니?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보지 않아도 느껴져. 너희 역사에도 보듯 전쟁을 하겠지. 더 가지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가 얽혀 싸우겠지. 어쩌면 지구의 온도가 더 뜨거워지기 전에 자중지란을 일으켜서 무너질 것 같기도 해.  핵폭탄이 터져도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우린 걱정하지 않아. 인류가 지구에 해악질을 하며 스스로 자멸하고 있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되거든. 

삶이 빛이고 죽음이 그림자라면 지금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경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상고객을 받아들인 책임은 우리도 피할 수 없겠지. 그래서 우리는 아기들 보듬듯 이야기해 주는 거야. 설령 우리 노력이 실패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을 얻겠지. 만약 그렇지 않은 길로 간다면 아직 너흰 희망이 있는 걸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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