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Garden (6)

괭이밥 사건

by 오리

내 발밑이 이상해.

열린 창문 틈으로 씨앗 하나가 날아왔었다. 아주 가냘프고 작은 씨앗이었는데 내 화분에 떨어졌다. 내쉬는 숨조차 들을 수 없이 작아서 주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뒤 그 씨앗이 잎을 쑤욱 내밀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괭이밥에요. 허락해 주신 것도 아닌데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나 또한 허리가 부러진 채 이곳에 온 내 처지였기에 이 친구가 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래 함께 잘 지내보자! 난 파피오페딜럼, 파피라고 해." 그렇게 괭이밥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내 뿌리는 화분 전체를 아우를 만큼 넓게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도 했지만 작은 생명을 돕고 있다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SE-47c5dc36-76e6-4746-90bc-ae1731d2d655 (1).jpg 파피오페딜럼 파피의 꿈 "꽃을 피우고 싶어"

하지만 괭이밥은 잎도 작고 키도 크지 않았다. 저리 작아서 어찌 살아갈까 하는 마음에 안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괭이밥에게 응원하는 따뜻한 말도 건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물을 충분히 주는데도 갈증이 나고 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기분 탓으로 돌리곤 했다. 군자할배와 프리도 내 낯빛이 좋지 않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주인 할아버지가 물을 주면서 "얘가 왜 이리 비실거릴까?" 하며 화분 속을 검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둘러보시더니 "이런 괭이밥이 날아 들어왔구나!" 그리고 신문지를 깔고 화분 속에서 조심스럽게 날 꺼내는데, 뿌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놀랐다. 꼬챙이처럼 쑤욱 뽑힌 나와 달리 괭이밥은 화분 전체에 잔뿌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잎은 작아도 거대한 몸통이 있었던 것이다.

SE-ab4e0cf4-2a13-4e0c-8af5-ed06882b6a65.jpg 괭이밥. 보이지 않는 뿌리는 상상 이상으로 넓게 퍼져있다.

괭이밥을 받아들인 것이 나였어도 이렇게 되기까지 알 수 없었던 것은 내 잘못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도 떠올랐다. 더불어 살자는 좋은 뜻이 이렇게 적반하장 격으로 날 밀어낼 줄은 몰랐다. 걱정스럽게 날 보던 소나무 할아버지는 자기처럼 누군가 허락 없이 머물지 못하도록 뿌리에서 독한 물질을 내뿜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고소앵초 프리도 자기처럼 뿌리를 촘촘하게 내뻗어 문단속 잘하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를 돕는다는 이면에는 단단한 내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 할아버지는 혀 찬 소리로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몰랐지?" 하며 화분 전체에 퍼진 괭이밥 뿌리를 긁어냈다. 오히려 날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괭이밥의 마지막 눈빛을 보니 도와줄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럴 수 있다 해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며 뒷골이 섬찟했다.

나로 인해 주인 할아버지는 이곳저곳에 화분들 주의 깊게 보시더니 건너편 선인장 틈에서 제법 뿌리를 내린 괭이밥을 찾아냈다. 함께 살던 나조차도 알지 못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잎은 작아서 무심하게 바라보면 뿌리가 화분 전체에 퍼진 것을 알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군자할배는 의기소침한 내게 한마디 했다. "자네의 화분을 풍성하게 채워서 다른 화분으로 또 하나의 파피를 보내는 기쁨을 느껴봐!" 그 소리가 가슴에 울렸다. 우린 함께 살지만,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돕겠다는 것은 위선이고 사치이다. 나 스스로를 돕는 것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 괭이밥이 더 처절하게 살아내려고 했었던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다. 주인 할아버지가 날 보살펴주고 있지만, 아무리 좋은 영양분을 떠먹여 준다 해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화분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한계가 아니라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곳이기도 하다. 잔뜩 움츠려든 뿌리를 다독이며 화분 전체에 뻗어갈 수 있게 발끝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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