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꽃, 우각
뿌리로 움켜쥔 굵은 모래 사이로 요리조리 도망가는 물줄기에 애타하는 악몽을 꾸다가 요란스럽게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무슨 일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베란다 안쪽 선인장 화분들이 수돗가에 모였다. '벌써 한 달이 지났나?' 재잘대는 선인장들의 노랫소리가 흥겹게 들렸다. 모래가 가득 채워진 화분에 생기가 느껴진다. 난 한 달 동안을 견딜 수 없었을 텐데, 저 친구들은 어찌 견뎌낼까 궁금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할아버지 손같이 생긴 선인장이 풍선처럼 부푼 꽃봉오리를 갸우뚱하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 파피라고 합니다" 내가 인사하자 "난, 우각이라고 하네! 그런데 자네는 좀 아파 보이는데 괜찮은가?" 아직 괭이밥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내 몰골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요. 차츰 나아지고 있어요" 그 말을 듣자 "음... 자네는 여러 번 이곳 베란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구먼" 그는 내가 꽃대가 부러진 채 이곳에 온 것과 괭이밥으로 소란스러웠던 며칠을 떠올린 듯하다 "죄송합니다. 하고 머쓱하게 사과했다. 그는 "그게 사과할 일인가? 자네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네. 괭이밥 녀석은 선인장 틈에서도 견디는 놈이니 자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야" 하며 위로해 주었다. 이때다 싶어 "그런데 우각님은 물이 부족하진 않으세요?"하고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가 대답 못해줄 것 없다는 듯 "나라고 물 없이 살 수 있겠는가? 그저 물이 내리지 않은 곳에서 살아남으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메마른 땅에서 물을 아끼고 날 위협하는 동물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잎을 가시로 만들었다네" 그러고 보니 우각선인장엔 잎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힘을 얻지? 의야한 눈빛을 보내자 "잎 없이도 밤에 숨구멍을 열고 이산화탄소를 모았다가 낮에 그것을 분해하면 힘이 생긴다네. 단지 그 양이 작아서 아주 천천히 자랄 뿐... 내가 작아 보여도 십 년의 세월을 보냈지"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느꼈지만, 입이 딱 벌어졌다. "뭘 그런 걸로 놀라나! 우리 선인장은 수백 년도 더 살기도 하지. 그에 비하면 난 아주 어린애에 불과하고 사막 또한 가본 적 없지만, 몸속 어딘가 그것을 기억을 품고 있다네. 자네와 내가 다른 듯 하지만, 수억 년 전부터 공유된 기억을 더듬어 주워진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걸세."
그와 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을 닮은 그의 꽃은 불타는 마음으로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꽃을 십 년 만에 어렵게 피운 것이라고 하니 그가 얼마나 참고 견뎌왔을까? 고작 꽃대가 부러진 것으로 세상을 다 산뜻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우각은 자신이 자라는 사막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사막에서 태어났을 뿐. 이곳 베란다 역시 그가 선택한 곳은 아니지만 묵묵히 제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퀴퀴한 향기가 나는 꽃을 보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꾸밈이나 향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상념에 잠긴 날 보던 군자할배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물이 부족해도 큰일이지만, 물이 넘쳐나도 뿌리가 썩는단다. 좋다고 제욕심을 채우기보단 부족해도 아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사막이던 밀림이던 높은 산꼭대기이던 우린 그저 주어진 환경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풀어갈 뿐이야."
얼마 뒤 우각이 제자리로 옮겨졌고 별이 지듯 그의 꽃도 아스라이 사라졌다. 하지만 꽃봉우리가 부풀며 별이 되어 벌어지던 꽃은 아직도 아른거린다. 나도 멋진 꽃을 피웠던 기억을 일깨웠다. 내 별은 어디에 있을까? 땅 위에 열대의 밀림은 줄어든다 해도 내 마음에 그곳은 언제나 꽃을 피울 것이고 그곳이 나의 별이 되리라 가슴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