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Garden (8)

군자할배의 아이

by 오리

군자할배의 주황색 꽃이 활짝 피었다. 집주인 할아버지의 손자들이 와서 꽃을 보고 즐기는 모습이 흥겨웠다. 장난스럽게 꽃송이에 초콜릿을 넣어 사진을 찍으며 웃는다. 할배에겐 벌이 찾아오면 좋겠지만, 이것도 이력이 나는지 허허 웃기만 하신다. 그의 흥겨운 축제는 끝나지 않을 듯했는데 3월 한 달이 채워지자 거짓말처럼 꽃이 진다. 꽃이 지면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그냥 가라앉아 있으면 잔병치레를 하게 되니까. 유난히 잎이 무성한 군자란 화분은 베란다에서 가장 큰 컸는데, 이젠 화분을 덮을 만큼 커진 것 같다. '비좁아서 숨차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주변에서 걱정을 하는 말을 한다. 소나무가 할배에게 "자네 분갈이할 때가 된 듯싶은데, 주인장은 조용하구먼" 그 말에 할배는 "그러게요 몇 해 전에 해주셨는데, 때가 되긴 했죠" 할배 바로 곁에 있는 백화등이 한마디 했다. "잎 사이에서 새순이 갈라져 올라오는 거 같은데, 분신을 나눠야 할 거 같아요"

SE-071bf2c7-10de-44d3-884a-34e4b1a67615.jpg 군자할배의 꽃

'분신을 나눈다고?' 그게 뭐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 의문은 얼마뒤 주인장이 할배의 화분을 들어내면서 알게 되었다. 화분갈이는 한마디로 화분 속을 새 단장하는 큰 공사였다. 군자란 화분에 얼마나 많은 뿌리가 얽혀있는지 보게 되었다. 그런데 미처 자리잡지 못한 뿌리는 물러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뿌리가 썩을 뻔했네. 게다가 한 포기가 새로 싹을 냈으니 새 화분이 필요하겠어" 하며 군자할아버지의 뿌리에서 갈라진 포기를 떼어냈다. 갓 자란 싹은 여리게 보였지만 할배를 그대로 빼닮았다. 너무 작고 귀여워서 우리는 눈을 떼지 못했다. 저 포기가 나눠진 군자란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아직 할배와 아기 군자란이 제자리를 잡지 못했기에 서로 말을 아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려서 군자할배의 뿌리가 정리가 되고 다시 화분에 새 흙과 굵은 모래가 채워졌다. 그리고 귀엽고 앙증맞은 화분에 아기 군자란이 곱게 세워져 군자할배 옆에 자리 잡았다.

P1440482.JPG 군자 할배와 아기 군자란

할배가 몸이 편해졌는지 "크흠! 몸이 꾸덕했는데, 이제 좀 살만하구먼! 그런데 잘린 뿌리로도 자랄 수 있었는데, 버려진 것은 너무 안타까워" 한정된 공간이라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욕망이 꺾인다는 건 매번 겪었다 해도 좌절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베란다 전체를 군자란 화분으로 채울 순 없을 거야. 침울한 분위기로 먹먹해지는 그때 아기 군자란이 고개를 들자 모두 그 아이를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와우! 제 집이 생겼어요." 천진난만한 소리를 듣자 한바탕 웃음소리가 베란다를 채웠다. 그래 아쉬움을 견디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기대와 희망이다. 저 작은 생명에서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느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제 흥에 겨워 즐거워하는 아이의 조잘대는 소리가 베란다에 울린다.

P1440489.JPG 가소고앵초 프리의 새싹

난 꽃이나 제대로 피울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만이 있었는데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할배와 저 아이를 보면서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씨앗이 되어 뿌려졌다. 며칠 뒤 주인장이 친척에게 아기 군자란을 선물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말에 "이렇게 빨리..." 하며 모두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구시렁대었지만, 가소고 앵초 프리는 "늘 겪는 일이야! 이리될 줄 알았어" 하며 체념하듯 말했다. 그녀 역시 새싹들을 여러 곳으로 보내다 보니 그리 받아들일 법도 했다. 이 상황을 처음 마주한 나 역시 황당했지만 이내 좋은 에너지는 널리 퍼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떠나는 아기 군자란에게 "지금처럼 밝은 생각과 마음이면 어딜 가더라도 넌 사랑받을 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내 미래 아이에게 해줘야 할 말이라 곱씹으며...

P1440464.JPG 꽃대가 올라온 파피오페딜롬 '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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